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네덜란드서 유년기 보낸 홍콩계 디자이너 카싱 렁
북유럽 요정 신화·민속에서 캐릭터 영감 얻어
2015년 라부부 등장한 그림책 ‘더몬스터즈’가 시초
중국 완구업체 팝마트와 독점 라이센스 계약
300여종 라부부 출시…200만원 제품도 ‘불티’
리사 등 톱스타 인증샷…라부부 글로벌 열풍
사람크기 한정판은 경매서 2억3000만원 낙찰도
[헤럴드경제=김영철 기자] “꼬리가 있는 건 ‘지모모(zimomo)’, 꼬리가 없는 건 ‘라부부(labubu)’라고 해요.”
세계적 아이돌 그룹 블랙핑크 리사는 유튜브 채널 ‘배니치 페어(Vanity Fair)’에 출현해 이 같이 말했다. 양팔에 라부부와 지모모 인형을 각각 안은 채 들뜬 모습으로 해당 인형들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모습에 해당 영상은 유력 매체를 포함 집중조명을 받았다.
중국의 완구업체 팝마트가 내놓은 인형 캐릭터 ‘라부부’가 전세계 Z세대(1990년대~2010년대 출생)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토끼처럼 긴 귀에 상어를 닮은 입과 뾰족한 이빨, 큰 눈이 특징인 이 인형은 블랙핑크 로제, 리사와 방탄소년단(BTS)의 뷔, RM 등 연예인들이 소장하면서 국내에서도 ‘라부부 열풍’을 일으켰다. 해외에선 미국 가수 리한나가 라부부 인증을 했고, 영국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자신의 가방에 달린 라부부 인형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지난 2015년 처음 등장한 라부부는 당초 수집가들에게만 주목받았다. 하지만 리사가 지난해 4월 소셜미디어(SNS)에 라부부 키링이 달린 가방과 라부부 인형 사진을 올린 것이 ‘라부부 신드롬’의 촉매제가 됐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가방에 라부부 키링(열쇠고리)을 매달고 SNS에 인증사진을 올리는 게 핫트렌드가 된 셈이다.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라부부 인형을 창조한 아버지는 홍콩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삽화가) 카싱 렁(53)이다. 라부부는 카싱 렁이 지난 2015년 제작한 캐릭터다. 10년이 지나 국경을 초월해 ‘라부부 광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7살에 홍콩→네덜란드 이주…“북유럽 신화 읽으며 영감 얻었다”
유럽에서 유년시절부터 성장기를 보낸 렁은 북유럽 민속과 특히 요정과 엘프 전설에 매료됐다. 이는 훗날 라부부를 만드는 원천이 됐다.
1972년 홍콩 태생인 렁은 7살이 되던 무렵 가족과 함께 네덜란드로 이주했다. 사실 렁이 태어나기 전에 렁의 부모는 이미 1960년도부터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로 넘어가 요식업 사업을 했다. 그러나 렁이 홍콩 문화와 언어를 습득할 필요를 느끼고 본국으로 넘어갔다.
홍콩과 다른 문화권인 네덜란드에서 렁이 적응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언어 장벽이 가장 큰 문제였다. 또래 학우들과 소통이 어려워 늘 혼자 다니기 일쑤였다. 이때 그가 손에서 늘 놓지 않던 것은 그림책이었다.
학교에선 렁처럼 네덜란드어가 서툰 학생들의 언어 습득을 돕기 위해 읽기 쉬운 네덜란드어 그림책을 나눠주곤 했다. 렁은 학교에서 받은 그림책들을 통해 네덜란드어를 공부하는 동시에 작가를 알게 됐고 점점 그림에 빠져들었다. 학교를 마치고나선 부모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을 위층에서 혼자 조용히 그림을 그리는 나날을 보냈다.
렁은 자신의 성장 배경이 예술적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바 있다. 훗날 그는 글로벌 문화 전문매체 하입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동화책을 좋아했고, 고대 유럽의 엘프 전설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며 “당시에는 게임기나 컴퓨터가 없어서 펜으로 인형을 그리곤 했고, 자연스레 동화를 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회상했다.
렁은 네덜란드 그림책 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을 접하면서 자랐다. 그는 중화권의 무협 소설 작가 김용(金庸)의 무협 소설을 읽으며 중국어 실력을 유지했다고 했다. 렁의 어머니도 그가 형제들과 함께 더 많은 영화, 연극, 뮤지컬을 보도록 격려했다.
이외로 렁은 홍콩 배우 장국영 사진, 캐나다 소설가 레너드 코헨의 작품, 영국 록 밴드 라디오헤드, 비틀스 등 레코드판 수집에도 열정을 보였다.
일러스트에서 장난감 디자인으로
렁은 원래 영화학에도 관심이 있었지만, 집안 사정상 비용 부담이 덜한 디자인, 사진, 출판, 조각 등을 포괄하는 미술학을 네덜란드 예술원에서 전공했다.
렁은 1995년 예술원을 졸업한 뒤 홍콩으로 돌아와 삽화가로 활동했다. 그는 홍콩 유명 액션 만화 ‘오리엔탈히어로즈(Oriental Heroes)’의 출판사 컬처콤에서 2003년까지 근무하다가 사스(SARS·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로 홍콩 경제가 침체되면서 벨기에로 넘어가 현지 출판사인 드 에인호른에서 일했다.
벨기에로 넘어가고 나선 유아용 그림책 제작에 매진하기 시작했다. 벨기에로 갔던 2003년 그는 그림책 ‘마마이즈에웨그(Mama is Weg)’ 삽화에 참여하면서 중국인 최초의 일러스트레이션 어워드 수상자가 됐다.
2010년부터는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장난감 디자이너로 직업을 바꿨다. 벨기에에 있었던 렁은 2011년 홍콩의 장난감 제조사 ‘하우2워크(How2work)’의 초청으로 다시 홍콩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때부터 장난감 제품 개발에 참여하며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렁은 중국 일러스트 동화책과 콜렉터블 피규어 시리즈를 하나둘 발표하면서 인지도를 점차 쌓아갔다. 지난 2013년에는 첫 중국어 그림책 ‘마이리틀플래닛(My Little Planet)’을 대만에서 출간했다. 이어 아동 그림책 ‘리지윌단쎈(Lizzy Wil Danssen)’을 발표했는데, 이는 수상 작가 브리짓 민느가 기획을 맡았으며, 유럽과 아시아 전역에서 번역·출간되며 큰 호평을 받았다.
렁이 장난감 디자인에 매진하다가 대망의 인형 캐릭터 라부부를 처음 제작한 건 2015년 무렵이었다.
당시 라부부는 렁이 네덜란드에서 접한 민속과 신화를 바탕으로 만든 그림책 ‘더 몬스터즈(The Monsters)’ 컬렉션의 일부였다. 이 책에는 ‘지모모(Zimomo)’, ‘타이코코(Tycoco)’, ‘스푸키(Spooky)’ 같은 캐릭터들이 있었는데, 그중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은 단연 라부부였다.
라부부는 300종 이상의 다양한 종류가 새로 출시됐다. 렁이 2019년 팝마트와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이후 완구업계의 판매 기록을 갱신하기도 했다.
폭발적인 인기에 라부부 인형 가격은 크기에 따라 약 2만원에서 약 120만원까지 다양한 가격대로 판매되고 있다.
좌절과 고난 속 아내·동료의 격려, 라부부 탄생으로
렁의 라부부 성공신화에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유년시절 언어 장벽부터 경력 단절로 인한 경제적 압박까지 창작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은 많았다.
변변한 수입이 없어 수년간 아내의 생활비로 생활하던 시절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홍콩 주간지 오리엔탈선데이와 인터뷰에서 “처음 3년 동안 수입이 거의 0에 가까웠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항공권 비용은 늘 아내가 지불해야 했고,
딸의 어린이집 비용도 세금 신고 자격이 없어서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했다.
하지만 흔들리던 렁의 마음을 다잡았던 건 그의 아내와 동료들의 위로 한 마디였다. 라부부가 다국적 문화의 인기 상징이 되기 전, 한 동료는 그에게 “지금 하지 않으면 지난 2년은 모두 헛수고가 될 것이다”며 그를 격려하기도 했다.
아내 역시 렁에게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렁이 위축돼 있을 때마다 아내는 그가 작품에 매진할 수 있게 늘 기운을 북돋아줬다고 했다. 실제로 렁은 가족의 격려 속에서 라부부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라부부 인기에 유통사 팝마트도 초메가 히트…‘짝퉁’ 출현도
라부부의 인기는 인형이라는 단일 제품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굿즈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라부부는 가방에 키링(열쇠고리)을 달아 개성을 표현하는 키링 문화가 ‘리셀(중고 거래)’ 수요와 만나 하나의 투자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에는 리셀 가격이 폭등하면서 투자 목적의 구매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베이징 경매장에선 사람 크기의 한정판 라부부가 120만위안(약 2억3000만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라부부가 전세계적인 메가 히트 IP로 등극하면서 팝마트도 돈방석에 앉았다.
팝마트는 올해 매출이 300억위안(약 5조81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북미 지역 매출은 전년 대비 1000% 폭증했다. 팝마트는 현재 전 세계 50개 이상의 신규 매장을 오픈한 상태다.
팝마트의 올해 상반기 매출은 139억위안(2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순이익은 46억 위안으로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기준 홍콩증권거래소에서 팝마트 주가는 종가 기준 326홍콩달러로, 최근 1년 새 600% 넘게 급등했다. 전세계 완구업체 중 시가총액 1위인데, 창업자 왕닝은 중국에서 10위권대 부호로 올라섰다.
라부부를 구매하려는 수요가 폭발하면서 모조품 ‘라푸푸’도 등장했다. 이 모조품마저 라부부와 필적 또 다른 유행으로 번지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라푸푸는 정품보다 크기가 작고 손·얼굴색이 다르지만 장난스러운 웃음과 부드러운 털은 그대로다.
미 CNN 방송은 “요즘 길거리에서는 라부부보다 라푸푸를 더 자주 볼 수 있다”며 “전 세계 사람들이 가방을 장식하는 라부부 키링을 사는 것은 단순히 장난감을 넘어 문화와 상업적 현상이 됐다”고 분석했다.
중국 해관총서는 올 들어 총 185만점의 위조 라부부 제품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왕쥔 해관총서 부서장(부청장 격)은 “올해 전국 세관에서 지적재산권 침해 혐의가 있는 라부부를 차단해 공정하고 건전한 무역시장 환경을 강력히 지켜냈다”며 “혁신은 발전을 이끄는 제1 동력이고, 지식재산권 보호가 곧 혁신 보호”라고 강조했다.
‘구매 전까지 모르는 상품’, SNS마케팅까지…“새로운 립스틱 지수” 평가도
라부부가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놀이’처럼 구매하는 방식이 Z세대를 자극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라부부는 ‘블라인드’ 박스로 판매되는데, 제품을 열어보기 전까지 어떤 인형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블라인드박스 시스템과 더불어 20~40달러(약 2만7700~5만5400원) 사이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 인플루언서나 스타들을 추종하는 심리를 파고든 적극적인 SNS 마케팅 등도 라부부 열풍에 일조했다는 평가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러한 방식은 각 시리즈의 장난감을 모두 구매하고자 하는 열성적인 수집가들의 재구매율을 높였다”고 분석했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이상 소비’처럼 보이는 ‘라부부 신드롬’의 배경에 경제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른바 ‘립스틱 지수’의 최신 버전일 수 있다”고 전했다. 립스틱 지수는 경제가 불황일수록 립스틱의 판매량이 증가한다는 뜻이다. 불황기에 비싼 명품 대신, 립스틱처럼 저렴하지만 심리적 만족을 주는 상품 소비가 늘어난다는 것인데, 라부부가 립스틱과 같은 구매 욕구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데이비드 랭 미국 새크라멘토주립대 경제학과장은 라부부 신드롬에 대해 “불황기의 대체 소비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이와 함께 Z세대의 정서적 불안감의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임상심리학자 트레이시 킹은 영국 데일리메일에 “단순한 취미를 넘어 번아웃이나 사회적 단절에 대한 심리적 반응일 수 있다”며 “수집품은 소유와 통제를 가능하게 해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고 설명했다.
“긍정적인 마음으로 세상 바라보길”…장난감에도 담긴 렁의 가치관
나는 부정적인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 점은 내 작품 속 캐릭터의 색채와 세계관에도 깊이 반영돼 있다. 비극의 전설을 각색한 캐릭터라도 희망적인 요소를 주입한다.
렁이 지금까지 디자인한 장난감은 700개가 넘는다. 수많은 장난감들 가운데 그가 가장 애착을 갖는 인형이 물론 라부부이지만, 몬스터즈 시리즈의 또 다른 캐릭터 지모모 역시 렁이 좋아하는 캐릭터다.
이외로 렁은 최근 창작한 장난감 중 자신의 딸의 애칭을 딴 ‘야야(Yaya)’를 특히 아끼고 있다고 했다. 렁은 “지모모는 라부부 부족의 리더로, 크기도 훨씬 크다. 사실 캐릭터들의 이름 중 많은 것들은 딸이 지어준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렁의 관점에서 창작은 단순한 상업적 행위가 아닌 감정과 가치관을 전달하는 매개체다. 새롭게 만든 캐릭터에 딸이 지어준 이름 붙이는 자세부터 그가 얼마나 많은 애정을 인형에 담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어쩌면 딸의 순수한 동심을 인형에도 불어넣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러분이 행복하지 않더라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랍니다.
저는 삶이 어떻게든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행복하지 않더라도 계속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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