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우영 기자]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의 망명은 지금까지 남한행을 택한 북한 외교관 가운데 최고위급이란 점에서 다른 탈북 사례보다 동기와 경위 등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건 주요 공관인 영국에 가족들과 10년이나 머물 정도로 당국의 신임을 받아온 그가 북한을 등진 이유다. 과거 1990년대 이전에는 정치적 이유로 탈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귀순용사’라는 호칭이 붙은 것도 그 때문이다. 1990년대 들어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경제적 이유로 북한을 떠나는 주민이 늘었다. 최근에는 삶의 질이나 미래, 남한에 대한 동경 같은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마치 이민을 가듯 탈북을 결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는 게 통일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영국 언론은 태 공사가 영국의 높은 물가와 부족한 본국의 지원으로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대사관 2인자으로 엘리트 계층인 그가 탈북을 결심할 만큼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을 가능성은 낮다. 현재까지 유력한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고위층이 탈북을 결심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가족의 안전”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가 들어선 뒤 숙청과 공포정치가 만연하면서 자신은 물론 오랜기간 해외에서 자유롭게 성장한 자녀의 앞날이 걱정돼 탈북을 결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지난 17일 태 공사 망명 사실을 확인하며 그 이유 중 하나로 ‘자녀의 장래 문제’를 꼽았다.

그런가하면 조만간 평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던 그가 공사로서 임무에 소홀함이 있었거나 비리를 저질러 남한행을 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외교관은 외화 및 사치품 상납, 자금 관리 등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그가 북한 자금 일부를 들고 나왔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대사관에 모두 모여 살고 보위부 요원의 감시는 물론 서로가 서로를 늘 점검하는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가족들을 데리고 무사히 한국까지 왔는지도 의문이다. 19일 영국 더 타임스는 태 공사가 주영 한국대사관에 망명을 신청했다고 보도했지만 주영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앞서 가디언은 어떤 식으로든 영국 정보 기관이 태 공사 망명을 도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태 공사는 직접 한국에 귀순 의사를 타진해 영국에서 곧바로 한국으로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속전속결 망명길은 그가 외교관이기에 가능하다. 해외에 체류하는 북한 주민을 감시하고 탈북을 막아야 하는 외교관의 역할이 오히려 역으로 자신의 탈북에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다른 외교관의 탈북 사례를 보면 일반 탈북민보다 훨씬 치밀하게 계획했으며 탈북 루트도 조금 달랐다는 게 한 소식통의 설명이다.

태 공사가 얼마나 고급 정보를 제공할지는 우리 당국의 최대 관심사다. 과거 1997년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망명으로 우리 정보 당국은 북한 고위층 정보를 풍부하게 얻어 이를 대북정책에 활용할 수 있었다. 태 공사는 비록 오랜 세월 해외에 머문 탓에 본국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지는 못하겠지만 김정은 정권의 외교 전략과 현황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핵심을 파악하고 있을 인물이다. 특히 지난해 에릭 클랩턴의 런던 공연을 보러 온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형 김정철을 수행한 경험이 있어 김정은 일가와 관련한 정보를 갖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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