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20년물 국채 입찰 수요 부진 기폭제

투매 이어지며 10년물 수익률도 4.6%↑

美증시 3대지수도 한달만에 최대 낙폭

재정적자 우려 커지며 달러가치도 하락

‘달러흐름 역행’ 비트코인은 최고가 경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규모 감세 법안이 미국의 재정적자를 키울 것이란 우려를 높이면서 국채 금리를 밀어올려 21일(현지시간) 미 주식과 채권값, 달러가 동시에 급락했다.

특히 미 재무부가 이날 오후 시행한 미 국채 20년물 입찰은 국채 시장에 만연한 불안감을 폭발시키는 결정적인 기폭제가 됐다. 이날 20년 만기 미 국채 입찰에서 수요 부진이 알려진 후 국채 투매가 이어지면서 미 국채 수익률 급등 및 국채 가격 하락이 촉발됐고, 증시도 동반 하락하며 낙폭을 키웠다.

미 국채 20년물은 10년물과 30년물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수요가 적고 월가의 주목도도 낮지만, 무디스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이뤄진 첫 국채 입찰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쏠렸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이날 160억 달러 규모의 입찰에서 응찰률은 2.46배로, 직전 6회 평균 응찰률(2.57배)에 다소 못 미친 것으로 집계됐다. 외국정부, 펀드, 보험사 등이 포함돼 해외투자 수요를 가늠할 수 있는 간접 낙찰률은 69.0%로 전월 대비 1.7%포인트 하락했다.

30년물 국채금리도 공화당 감세안에 대한 우려로 다시 5% 선 위로 올라섰다.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3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이날 미 증시 마감 무렵 5.09%로 전장 대비 12bp 급등했고,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도 같은 시간 4.60%로 전장 대비 12bp 올랐다.

블리크리파이낸셜그룹의 피터 부크바 최고투자책임자(CIO)는 “20년물 국채는 유동성이 다소 부족하고 미아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만기 놀이터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사람은 많지 않다”면서도 “최근 국채금리가 다시 불안정해졌기 때문에 시장이 주목했다”고 말했다.

최근 한 달간 빠른 회복세를 이어온 뉴욕증시 3대 지수는 한 달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는 전장보다 816.80포인트(-1.91%) 포인트 내린 41,860.44에 마감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는 전장보다 95.85포인트(-1.61%) 내린 5844.61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종합지수는 전장보다 270.07포인트(-1.41%) 내린 1만8872.64에 각각 마감했다.

재정적자 우려에 달러 가치도 하락했다. 6개국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 지수는 전날보다 0.49포인트 떨어진 99.63에 거래됐다. 지난 7일 이후 약 2주만에 다시 100선 아래로 내려왔다.

통상 달러 흐름과 반대로 움직이는 가상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은 4개월 만에 11만달러를 넘으며 역대 최고가를 찍었다. 이날 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미 동부 시간 오전 11시 7분 비트코인 개당 가격이 24시간 전보다 5.86% 오른 10만9493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1월 21일 기록한 10만9358달러를 웃도는 가격으로, 지난 1월 이후 4개월 만의 최고가 경신이다.

비트코인은 이후 약 2시간 동안 상승세를 이어가 낮 12시 45분 10만9888.11달러까지 기록했고, 잠시 정체 후 11만달러를 돌파했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26일부터 의회가 메모리얼데이(현충일) 휴회에 들어가기 전에 트럼프 감세안 연장·확대 등을 골자로 한 이른바 ‘하나의 아름다운 법안’(메가 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목표다.

앞서 미 의회 합동조세위원회(KCT)는 메가 법안 초안을 분석한 결과 법안 통과 시 향후 10년간 연방정부 재정적자를 2조5000억달러(약 3440조원) 이상 증가시킬 것이라고 추산했다.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지난주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강등하며 재정적자 악화와 정부부채 증가를 조정 사유로 제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감세안 통과가 안전자산인 미 국채의 신뢰를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투자자 우려가 커졌다.

미 투자은행 제프리스의 토머스 사이먼스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날 입찰 결과에 대해 장기 미 국채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매도 압력이 단기간에 뒤바뀌기는 어려울 것임을 시사했다고 지적했다.

CFRA리서치의 샘 스토발 수석 투자전략가는 이날 CNBC 인터뷰에서 “투자자들은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고 부채를 줄이기 위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며 “이런 우려가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나타난 미 국채 금리 급등이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시행을 전격적으로 유예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이날 국채 금리 급등은 ‘메가 법안’ 통과를 앞두고 채권시장이 또다시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미슐러 파이낸셜그룹의 톰 디갈로마 매니징디렉터는 “우리는 오래된 재정적자 문제를 안고 있고 이 문제는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너무 많은 정부 부채가 누적된 상황에서 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는지 알아내고자 시장이 정부와 맞서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수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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