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판매정책·비인격적 대우에

사측 매출강요 부인에도 유족손 들어

실적 압박으로 2019년 8월 극단적 선택을 한 A씨가 생전에 받은 독촉문자
[유튜브 ‘KBS교양’캡처]
실적 압박으로 2019년 8월 극단적 선택을 한 A씨가 생전에 받은 독촉문자 [유튜브 ‘KBS교양’캡처]

2019년 8월 20일 오전 11시께. 한 청년이 10층 건물에서 차디찬 아스팔트 바닥으로 스스로 몸을 던졌다. 롯데하이마트에서 일하던 L사 판매직원 A씨였다. 불과 스물 여덟의 나이였다.

그가 남긴 것은 7000여 만원의 빚과 고객의 캐시백 독촉 문자가 가득 담긴 휴대전화뿐이었다. 빚이 생긴 이유는 A씨가 코인이나 도박에 손을 대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는 지나치게 성실하게 일했을 뿐이었다. 입사 2년 차였던 A씨는 항상 판매실적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걸까.

1·2심 법원은 “A씨의 팀장·지점장과 롯데하이마트가 A씨의 업무실적 압박을 가한 결과 A씨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분명히 판시했다.

13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A씨는 2017년 1월, 경남 김해에 있는 롯데하이마트의 한 지점에 판매사원으로 취업했다. 그의 판매실적은 입사 초기부터 항상 최상위권이었다. 하지만 A씨의 낯빛은 점점 어두워졌다. 실적을 유지하라는 팀장과 지점장의 압박이 점차 거세졌다. 이들은 문자메시지와 전화로 “이달 우리 지점이 무조건 이겨야 한다” “어디 뭐 동네에 X발 놀러왔나” “X발, 옥상 가서 다 뛰어내릴까?” “니가 뭐 이 X끼, 휴무고 X발 이러면 뭐, 무슨 말인지 알겠나” 등의 내용을 보내며 A씨를 압박했다.

A씨는 실적을 위해 사비를 들이기 시작했다. 사은품 명목으로 가전제품을 구매해 직접 고객들에게 지급하거나, ‘캐시백’ 누락을 해결하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

극단적 선택 직전 A씨에게는 7000여 만원의 빚이 쌓였다. 지인과 직장동료에게 빌린 1000만원과 금융권에서 빌린 6000만원의 빚이었다. 휴대전화에는 “캐시백 언제 주냐”는 고객들의 독촉 문자가 가득했다.

그러나 A씨의 죽음에 “책임을 지겠다”고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팀장과 지점장은 “A씨에게 판매실적으로 압박을 주거나 캐시백 부담을 전가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발뺌했다. “업무 압박이나 스트레스를 준 적도 없다”고 했다. 롯데하이마트 측도 마찬가지였다.

롯데하이마트 측은 “고인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다”라고 하면서도 손해배상 등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했다. 이들은 “회사는 판매자들에게 매출압박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 측에서는 매출압박을 금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점장들과 직원에게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며 “매출압박은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2개월 뒤 이 사건은 공론화되며 국정감사에서도 다뤄졌다. 당시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청년(A씨)이 왜 죽었는지는 결과를 봐야 알 수 있겠지만 판매 실적 압박으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높다”라며 “이런 사태는 안 일어나야 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사건이 관심에서 멀어진 사이 A씨의 유족은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A씨의 파견업체, 그의 팀장과 지점장, 롯데하이마트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재판 과정에서 유족은 “A씨가 이들로부터 판매실적 압박을 받았다”며 “부당한 판매정책, 비인격적 대우로 A씨가 사망에 이르렀으므로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1·2심은 일관되게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1심을 맡은 부산지법 동부지원 민사2단독 신헌기 부장판사는 2023년 2월 “피고들(파견업체·팀장·지점장·롯데하이마트)이 공동으로 A씨의 유족(부모님과 누이)에게 1억 6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햇다.

1심 재판부는 “망인(A씨)이 롯데하이마트 매장에서 L사 제품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캐시백 누락분을 해결하고, 사비로 사은품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음으로써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채무의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이어 “팀장과 지점장이 A씨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A씨에게 비정상적인 판매행위를 통해서라도 판매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롯데하이마트 측에 대해서도 법원은 “팀장·지점장의 사용자(사업주)인 이상 책임을 부담한다고 할 것”이라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A씨가 극단적 선택하지 않았다면 정년까지 벌 수 있었던 수입(일실수입) 9000여 만원, 장례비 600만원, 위자료 5500여 만원 등을 이들이 배상하라고 했다.

쌍방이 모두 항소했지만 2심의 판단도 비슷했다. 2심을 맡은 부산지법 민사5-3부(부장 고종영)도 지난달 16일, 1심과 같이 “1억6000여만원을 유족에게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안세연 기자


notstr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