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재판에선 불법촬영 혐의 인정

유족 “위자료 등 지급하라”

법원 “인과관계 부족”

사진은 참고용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사진은 참고용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지난 2022년 10월, 미성년자 A양이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갑작스런 죽음에 유족은 딸의 휴대폰을 포렌식했다. 포렌식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A양이 가족 몰래 사귀던 군인 남자친구가 불법촬영한 A양의 성관계 영상이 다수 발견됐다.

유족은 남자친구 B씨를 불법촬영 혐의로 고소했고, 유죄가 선고됐다. 실형이 아닌 징역형의 집행유예였다. 유족은 형사 판결문을 근거로 B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B씨가 불법촬영물을 A양에게 전송해 심리적 불안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극단적 선택하게 했으므로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변호사 선임비 등 소송 비용도 유족이 부담하라고 했다. 법원은 “B씨가 불법촬영물을 전송한 결과 A양이 극단선택했다고 볼 만한 인과관계가 부족하다”고 봤다.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B씨는 A양과 교제했던 당시 육군 소속 군인이었다. 그는 A양과 2022년 5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약 5개월 간 교제했다. 문제가 된 불법촬영물은 2022년 6~7월께 촬영됐다. B씨는 이를 A양에게 전송했고, 그 직후 A양은 극단선택했다.

형사 재판에선 B씨의 혐의가 인정됐다. 군사법원은 B씨가 2022년 6월에 한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에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확정됐다. 일선 검찰청도 B씨의 불법촬영 혐의를 유죄로 봤다. 2022년 7월에 이뤄진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 의정부지검은 2023년 3월,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란 기소(재판에 넘기는 것)를 미루는 처분이다. 혐의가 가볍거나 참작을 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이뤄지는 절차로 혐의는 인정된다는 것을 뜻한다.

▶유족, 손해배상 소송 냈지만 기각=A양의 유족은 B씨를 상대로 5600여만원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재판 과정에서 “B씨는 불법촬영한 성관계 영상을 미성년자였던 A양에게 전송했다”며 “이러한 위법행위로 A양이 극단 선택했으므로 위자료 등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을 맡은 의정부지법 민사31단독 정승호 판사는 지난 4월, 이같이 판단했다. 1심 재판부도 “B씨가 A양과 성관계 영상을 촬영하고 전송한 행위가 아동청소년 성보호법상 성착취물 제작·배포죄 등에 해당하는 불법행위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극단적 선택은 일반적인 불법행위로 생기는 일반적인 결과라 할 수 없다”며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자가 심각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겪어 자신의 삶을 극도로 비관할 정도에 이른다는 등 특별한 사정을 예견할 수 있는 경우에만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B씨의 범죄행위와 A양의 극단적 선택 사이에 이러한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기 부족하고,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1심 재판부는 그 이유로 “해당 불법촬영물이 제3자에게 유포됐거나, 외부로 알려진 적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B씨가 A양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를 비춰보면, 둘은 교제기간에 해당 불법촬영물 촬영·전송을 전후로 특별히 관계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고 했다.

이어 “둘이 나눈 대화를 고려하면 B씨의 불법촬영 및 전송 행위가 A양에게 심각한 심리적 불안감, 압박감을 느끼게 했다고 보이지 않는다”며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B씨에게 A양의 사망이라는 손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notstro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