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비관세, 경제안보, 투자, 환율 논의

최상목 “차분하고 질서있는 협의할 것”

“자동차 분야 중점 설명…FTA 언급 안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 장관, 최 부총리,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연합]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Trade Consultation)’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 장관, 최 부총리,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연합]

정부는 사실상 첫 한미 고위급 통상 협의에서 무역 균형 추구 의지와 조선 산업 협력 강화를 강조하며 협상의 첫 단추를 끼웠다. 90일간의 상호관세 유예조치 종료 기간인 ‘7월 8일’을 데드라인으로 잡고 4대 핵심의제를 중심으로 협의를 진행하기로 하면서 체계적인 협상 로드맵을 구축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 부과가 양국 간 경제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한국의 정치 일정(조기 대선) 등에 대한 이해를 요청했다.

다만 협상의 속도에 대해선 양국 간 온도차도 감지된다. 한국은 6월 3일 대선 이후 새 정부 출범 후 포괄 타결에 무게를 실은 반면, 미국은 보다 신속한 성과 도출을 원하는 모습이다.

또 이번 협의에서 미국 측이 방위비 문제를 거론하지 않아 ‘선방’했다는 평을 받지만, 한국이 미국에 제시한 ‘최선의 제안(A game)’이 공개되지 않은 점은 불확실성으로 지목됐다.

25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전날 열린 재무·통상 ‘2+2’ 협의에서 상호·품목별 관세 폐지를 목표로 일명 ‘7월 패키지(July Package)’를 마련하기로 했으며 ▷관세·비관세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통화(환율)정책 4개 분야를 중심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7월 패키지’라는 실질적 기한을 도입함으로써 체계적인 협상 로드맵을 구축한 것으로, 내주부터 가동될 실무 협의에서 보다 세부적인 내용이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이번 협의에서 무역 불균형 해소와 제조업 부흥을 위해서라도 전략적인 산업 협력 파트너인 한국에 상호 관세나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하며 관세 면제나 예외를 설득하는 전략적 접근 방식을 취했다.

한국의 대미 협상 지렛대 카드로 거론됐던 한미 조선 협력과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참여 검토 문제도 이날 협상에서 언급됐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모든 국가가 무역수지 균형을 얘기하고 있을 텐데 가장 차이 나는 부분이 조선산업 협력이 아닐까 생각한다”면서 “이 부분이 양국 간에 가장 중요하게 협력해나갈, ‘윈윈’ 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설명을 했고 좋은 반응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안 장관은 LNG 논의와 관련해서는 “일본·대만·베트남 등 아시아 주요 수요 국가들이 같이 협의체 만들어봐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은 그동안 계속 해왔던 얘기들이기 때문에 그런 정도 논의가 있었다”면서 “모든 고려사항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면밀하게 파악해서 가능할지, 언제 어느 정도 규모로 될지 확인이 된 다음에 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논의된 내용에 대해 미국 측도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스콧 베선트 미재무장관은 한미 2+2 협의 이후 백악관에서 열린 미·노르웨이 정상회담에 배석해 트럼프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국이 ‘최선의 제안(A game)’을 가져왔다면서 “한국과 매우 성공적인 양자 회의를 가졌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번 협의에서 미국 측이 방위비 문제를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한미 FTA 개정과 소고기 수입 확대 내용도 협의 테이블에는 오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강조해왔던 만큼 방위비는 언젠가는 틀림 없이 언급될 것”이라며 “당장 논의를 안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은 그간 연례 무역장벽 보고서 등을 통해 30개월 미만 소고기 수입 제한에서부터 구글의 정밀 지도 반출 문제 등 한국에 자국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을 저해하는 다양한 비관세 장벽이 존재한다는 문제를 제기해왔다. 미국은 향후 실무 논의에서 그간 수출 장애 요인이 됐다고 주장하는 각종 비관세 장벽 이슈를 꺼내 들면서 한국의 양보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속도에 대한 온도차도 감지됐다. 우리 대표단은 6월 3일 대선이 열려 정부가 교체되는 국내 정치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대통령 권한 대항 체제인 현 정부에서 협상의 기반을 닦고 최종 결정은 새로 선출된 정부가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안 장관은 “전체 패키지가 합의돼야 해서 일부 이슈가 정리된다고 사전에 예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오는 6월 3일 열리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 전에 패키지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적다는 취지로 답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전체 ‘패키지’ 합의를 강조했다.

반면 베선트 장관이 “우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고 언급하는 등 한국을 포함한 5개국을 우선 협상국으로 정하고 트럼프 무역정책 성과물을 하루 빨리 도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미 간 협의 방향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 참석차 이뤄질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5월 15~16일 방한 때 중간 점검을 거쳐 보다 구체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우리 정부 말대로만 간다면 참 좋을 것 같지만 미국에 제안한 것들을 공개하지 않았기에 불확실성도 크다”고 평가했다. 이어 “베선트 재무부 장관이 ‘한국 정부가 최선의 제안을 가져왔다’고 언급한 것을 보면 미국이 만족할 만한 제안을 한 것 같은데 이것이 공개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예상한 대로”라는 평가를 내놨다. 그는 “초기 어떤 걸 할 수 없고 계획을 세우고 온 것 뿐”이라며 “우리는 상호관세 철폐, 품목관세 철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저 쪽에서 요구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황이라 두고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영경·김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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