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비 줄이려고” “흔치 않은 매물이라길래”

사회초년생 노린 전세사기 피해 2년여째 계속

전세사기 특별법 만료 ‘D데이’는 한달 앞으로

[챗GPT를 활용해 제작]
[챗GPT를 활용해 제작]

[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지난해 6월 고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월세살이를 청산하기로 마음을 먹은 20대 A씨. 그는 야심차게 서울에서 살 만한 전세집을 알아보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의 한 다가구주택 원룸에 입주하기로 결정했다.

이전에 살던 곳에 비해 쾌적해 보이는 데다 ‘요새 이렇게 평지에 위치해 있고 신축급인 집은 잘 나오지 않는다’는 공인중개사의 설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초 해당 건물에 채권최고액 6억5000만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되어 있기도 했지만 공인중개사는 ‘어떤 상황에서도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다’며 A씨를 안심시켰다.

그렇게 A씨는 공인중개사의 말을 믿고 원룸 전세계약을 마쳤으며, 3회에 걸쳐 임대차보증금 총 1억5000만원을 임차인 명의의 계좌에 지불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날벼락같은 소식이었다. 올해 2월 13일 해당 건물이 임의경매로 넘어갔다는 것. 이에 A씨는 지난 3월 20일 사기 혐의로 임대인 2명에 대한 고소장을 동작경찰서에 제출했다. 10여가구가 사는 건물이었던 만큼 피해자와 피해금액의 규모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전세사기 피해지원을 위한 특별법 만료 기한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전국 곳곳에서 A씨 사례와 같은 전세사기 피해가 끊이질 않고 있다.

15일 전세사기피해지원위원회와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 이후 올해 3월까지 전세사기 피해자 수는 누적 2만8866명이다. 2024년 8월까지 1000명대를 유지하다 같은해 9월 764명으로 줄어드는듯 하더니 10월이 되어서는 1475명으로 급증했다. 올해 들어선 1월 898명, 2월 1182명, 3월엔 873명의 신규 피해자 결정이 있었다. 이같은 추세라면 다음달 피해자 수가 3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전세사기 피해도 서울·세종·대구 등 전국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1월 서울 동작구에서 일가족이 조직적으로 전세사기를 벌여 사회초년생 등 청년 75명이 피해를 입은 바 있다. 이들이 돌려받지 못한 전세보증금은 66억원에 이른다.

올해만 해도 2월에는 신촌에서 90억원대, 세종에서 200억원대 규모의 전세사기 피해가 발생했으며, 지난달에는 대구에서 22억원대 전세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문제는 전세사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전세사기 특별법은 만료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023년 6월 시행된 특별법은 2년의 유효기간을 두고 있어 오는 5월 31일 만료될 예정이다. 이대로라면 6월1일 이후부터 신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생겨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그에 따른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된다.

피해자 단체는 특별법을 2년 이상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세 갱신계약 만료 때 피해 사실을 인지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이철빈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위원장은 “특별법 시행(2023년 6월) 직전에 계약을 했던 피해자들의 경우, 2027년이 4~5월께 되고 나서야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면서 “이들까지 포괄해 구제하려면 (특별법을) 3년 정도는 연장해야 하지 않겠느냐. 경찰 수사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실제로 특별법 기한이 만료되면 피해를 인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피해자 인정을 못 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위원장은 “특별법 기한이 종료될 시 지자체에서 피해자지원센터로 파견됐던 인원들을 복귀시킬 수 있다”면서 “그렇게 되면 피해자지원센터 등 여러 기관의 지원 체계가 실질적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고 피해자는 안내 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표류 상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특별법 연장과 더불어 전세사기 예방을 위한 제도 개선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전세사기 피해를 줄이려면 피해자에 대한 지원만큼 예방 또한 중요하다”면서 “전세권·임차권 설정 의무화와 전세가율 상한제 도입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 국회에는 특별법 유효기한을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 연장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 9건이 상정돼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도 다음날인 16일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심사를 위한 소위원회를 열기로 했다.

국토부 역시 특별법 기한 연장에 동의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다만 탄핵정국에 이어 조기대선 정국이 시작된 만큼 논의 기한이 촉박해 때를 놓치면 피해자 구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