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결만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항소심 판결 등 국가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중요 사안이 사법부의 판단에 맡겨져 있다.

사법부가 정치적 문제를 상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방향인가? 우리 헌법은 권력 분립 원칙을 기반으로 정치적 문제는 기본적으로 입법부와 행정부가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하에 설계됐다. 법원은 법적 분쟁을 해결하는 기관이지, 정치적 갈등을 조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정치권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부에 맡기면서 ‘정치의 사법화’가 심화되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적 책임을 법적 판단으로 대체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이는 정치 과정의 실패를 초래하며 민주주의 원리에 따른 정책적 논의와 타협이 줄어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정치적 논쟁이 법적 공방으로 변질되면서 국정 운영이 뒷전으로 밀리고, 정책 논의가 실종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더 이상 모든 문제를 사법부의 법적 판단에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치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정치로 해결할 일을 사법부에 맡기고도 재판에서 유리한 결론을 도출하고자 다수의 힘을 내세워 사법부를 공격하고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미국 헌법 입안자들은 사법부의 독립성과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보호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인 해밀턴은 “사법부는 가장 약한 권력이며, 오직 판단만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하며 사법부가 정치적 압력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매디슨은 다수의 폭정을 경계하며, 사법부가 감정적 여론이나 정치적 압력에 따라 움직이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이러한 원칙은 오늘날 한국에도 유효하다. 사법부는 정치적 논란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하며, 판결이 정치적 공격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근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처럼 법원을 대상으로 한 물리적 위협이나 협박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 용인될 수 없다. 나아가 판사나 재판관 개인에게 좌우 프레임을 씌워 공격하는 행위도 심각한 문제다. 특정 판결이 불리하다고 해서 판사를 ‘좌파 판사’ 혹은 ‘우파 판사’로 낙인찍는 것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위험한 행위다. 이런 정치적 공세가 반복될수록 사법부의 공정성이 의심받게 되고, 법적 판단이 정치적 논란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국민적 관심사에 대한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단이 내려지면, 여야 모두 승복하고 정치적 갈등을 종식해야 한다. 어떠한 결정이 나오더라도 불복 논란 없이 이를 인정하는 태도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기본 원칙이다. 사법부를 정치적 잣대로 공격하고 이용하는 시도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행위이며, 이는 한국 사회의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 정치의 사법화가 지속된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이다. 정치권은 이제 본연의 역할을 되찾고, 국민을 위한 정책과 합의를 도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이며,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다.

이인석 법무법인 YK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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