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퇴직연금 상품을 다른 금융사로 옮길 수 있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31일부터 시작된다. 약 4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에서 ‘머니무브’를 기대하는 은행·증권업계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31일 서울 한 증권사 영업점에서 관계자가 관련 홍보물을 부착하는 모습 [연합]
기존 퇴직연금 상품을 다른 금융사로 옮길 수 있는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가 31일부터 시작된다. 약 400조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에서 ‘머니무브’를 기대하는 은행·증권업계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31일 서울 한 증권사 영업점에서 관계자가 관련 홍보물을 부착하는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퇴직연금의 최근 10년간 연 환산 수익률이 2%대 초반에 그치는데 비해 퇴직연금 수익률은 5%대를 웃돌고 있다. 당장 지난해 금융기관이 가져간 퇴직연금 수수료만 1조6840억원이 넘는다. 퇴직연금에 가입한 직장인들은 쥐꼬리 수익률을 내면서도 높은 수수료를 수취해가는 퇴직연금 사업자들에 대한 불만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현행 수수료 체계가 소비자에게 불리한 측면이 많다며 근본적인 개혁과 당국의 강력한 감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운용 성과와 무관하게 적립금 규모에 따라 부과되는 현행 시스템은 금융사 간 수수료 인하 경쟁을 저해하면서 결국 가입자 혜택을 줄인다는 것이다. 서비스 질에 따른 수수료 차등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사업자가 ‘알아서’ 책정하는 수수료…정작 가입자는 ‘몰라’

26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등 퇴직연금 관리 감독기관의 통합연금포털을 보면 퇴직연금은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따라 사용자(회사)가 일정 금액을 금융기관에 위탁해 운용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금융사는 이 돈을 운용한 수익을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사는 다양한 명목의 수수료를 수취한다.

수수료는 크게 운용관리 수수료, 자산관리 수수료, 펀드 총비용 등 세 가지 종류로 나뉜다. 운용관리 수수료는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방법에 대한 컨설팅 및 설계, 적립금 운용 현황에 대한 기록관리, 가입자 교육 등의 서비스 명목으로 부과된다.

수수료율은 적립금 대비 연간 0.2∼0.6% 수준이다. 자산관리 수수료는 적립금의 보관·관리, 운용지시 이행, 연금을 포함한 급여 지급 등의 서비스에 대한 비용으로 떼가는 금액으로, 적립금 대비 수수료율은 연간 0.1∼0.5% 수준이다.

펀드 총비용은 펀드 같은 실적배당상품 투자 시 발생하는 각종 보수(운용·판매·수탁·사무관리 보수)와 수수료(선취·후취·매매 중개 수수료) 등 추가 비용이다. 수수료율은 펀드 유형에 따라 연간 0.5∼2.0% 수준이다.

그러나 이를 알고 내는 직장인은 찾아보기 어렵다. 게다가 이 모든 수수료의 부과 기준과 요율을 금융사가 자율적으로 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도 드물다.

은행, 보험, 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별로, 업권별로, 상품별로 수수료율이 천차만별이다보니 가입자 입장에선 어떤 상품이 유리한지 비교하기 어렵다.

부담 주체도 헷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퇴직연금 유형은 확정급여형(DB), 확정기여형(DC), 개인형·기업형 퇴직연금(IRP) 등으로 나뉘는데, 이 유형에 따라 수수료 부담 주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DB형은 회사가 운용책임을 지며 퇴직 시 받을 급여가 사전에 결정된 방식이고, DC형은 근로자 개인이 직접 투자 상품을 선택하고 운용하며 납입한 금액과 그 운용 수익으로 퇴직급여가 정해지는 방식이다.

IRP는 이직·퇴직 시 받은 퇴직급여를 적립해 운용할 수 있는 계좌를 말한다. 이 중에서 DB형과 DC형, 기업형 IRP의 운용·자산관리 수수료는 사업자(회사)가 부담한다. 반면 개인형 IRP의 경우 개인이 추가로 넣은 돈, 퇴직 후 받는 돈에 대한 수수료는 가입자인 근로자 개인이 납부해야 한다.

‘이 정도야’ 했지만...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수수료

수수료는 소액처럼 보이지만 30년 이상 장기간 적립되는 퇴직연금의 특성상 노후 자금에서는 큰 차이를 만든다. 1%의 수수료 차이가 최종 수령액에서 수천만 원의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적립금 2000만원일 때 연간 수수료는 약 12만8000원 수준이지만, 4∼5년 후 적립금이 1억원으로 늘어나면 연간 수수료는 무려 64만2000원에 달한다.

또, DC형과 개인형 IRP 가입자가 투자하는 실적배당상품, 특히 펀드에는 사업자가 내는 운용·자산관리 수수료 외에도 다양한 명목의 보수와 수수료가 발생한다. 이는 수익 여부와 관계없이, 마치 몰래 빠져나가는 세금처럼 투자 원금과 수익에서 자동으로 차감된다. 그래서 펀드 운용 결과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하지만 자신이 투자한 펀드에 대한 수수료 폭탄까지 떠안아야 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펀드 수수료는 크게 보수와 기타비용보수, 그리고 수수료로 구분된다. 주목해야 할 것은 TER(Total Expense Ratio·총보수비용)이다. 펀드가 1년 동안 부과하는 총비용을 순자산총액으로 나눈 비율로, 가입자가 실제로 부담하는 펀드 운용 비용의 핵심이다. TER 안에는 운용보수, 판매보수, 수탁보수, 사무관리보수 등 다양한 명목의 보수가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펀드를 판매한 퇴직연금 사업자가 가져가는 판매보수는 금융회사와 그 직원들의 실적에 따라 움직이는 구조일 가능성이 높다. 이 탓에 가입자의 이익보다는 판매사의 이익을 우선시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일반 펀드 상품에 비해 퇴직연금 실적배당 상품의 수수료가 절반에서 3분의2 수준으로 낮아보이지만, 장기간 투자하는 퇴직연금 특성상 이 작은 차이가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금액으로 불어나 가입자 노후 자산을 잠식할 수 있다

“수익률 성과에 연동해 수수료 책정토록 바꿔야”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서울 중구 근로복지공단 서울합동청사에서 열린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가입사업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26일 서울 중구 근로복지공단 서울합동청사에서 열린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 가입사업장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지난해 은행, 보험사, 증권사 등 퇴직연금 사업자가 벌어들인 수수료 수익은 1조6840억5000만원에 달한다. 상위 7개 금융사인 신한은행(2116억4300만원), KB국민은행(2064억2300만원), 삼성생명(1714억6400만원), 하나은행(1663억200만원), 우리은행(1284억1000만원), IBK기업은행(1269억3900만원), 미래에셋증권(1089억9300만원)의 수입은 엄청난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는 2024년 말 현재 432조원을 웃돈다. 10년 후에는 1000조원 시대로 진입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적립금이 늘어나는 만큼 금융사가 챙기는 수수료도 비례해서 늘어난다. 실제 2018년 8860억4800만원이던 수수료 금액은 지난해에는 약 1조7000억원으로 늘었다. 다만 이렇게 챙겨가는 수수료가 수익률과 무관하다는 점이 문제다.

금융사들은 “한국의 퇴직연금 수수료는 선진국과 비교해도 절대 높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수수료 체계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적립금 규모에 비례해 정률로 부과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로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과 내용에 따라 수수료를 차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수익률’에 따른 성과 연동형 수수료 체계를 구축하고 장기 가입자에 대한 수수료 우대 혜택을 확대한다면, 가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경쟁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fact0514@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