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만학도’ 초·중등 학력인정 졸업식 570명
중학교 학력 위해선 3년간 1350시간 이수해야
네팔이주여성 “아이 한글 교육 위해 수업 들었다”
1급 중증 장애 김홍자씨 우등상 표창

[헤럴드경제=김용재 기자] “아이가 이제 4살인데, 제가 한글을 가르치고 싶어서 수업을 듣게 됐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서울시교육청 학력인정 문해교육 졸업식’에 참여한 네팔 출신 세르파낭디키씨의 말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초등·중학 학력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 이수자 570명(초등학력 427명, 중학학력 143명)의 졸업식을 지난 12일 개최했다. 이들은 교육감이 설치·지정한 67개 문해교육 기관에서 초등·중학 과정(초등학교 720시간, 중학교 1350시간)을 이수했다.
세르파낭디키씨는 “스무살에 한국으로 결혼 이주를 와 스물한 살의 나이에 낳은 아이를 위해 한글을 배우기로 결심했다”라며 “아이가 이제 4살 정도 되는데 제가 한국말도 못 하고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말을 알려줄 수가 없었기에 제가 한국말을 공부하면 저도 알게 되고 우리 아이에게도 가르쳐주기 쉬울 것 같아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이가 점점 말이 트이면서 질문도 하고 대답도 하는데 제가 말을 못 하다 보니 참 힘들었다”라며 “다른 나라에서 와 한국에서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도 힘든데 짬을 내 교육을 받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그런 그녀는 문해교육 졸업식에서 대표로 시 낭송을 하고, 대학 진학도 꿈꾼다고 한다. 그녀는 “현재 중학교 과정을 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고등학교에 이어 대학교까지 가고 싶다”고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다.
이번 졸업식에는 뇌병변과 언어장애 1급 중증 장애가 있는 김홍자(57)씨도 참석했다. 그녀는 장애로 거동이 편치 않아 활동지원사 도움이 필수적이고, 의사소통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매 수업에 성실히 참여한 개근 학생이었다.
김씨가 지난해 3월부터 다닌 누리평생교육원 측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수업마다 발표에도 적극적이고 학습 의욕도 높아 면학 분위기 조성에 큰 역할을 했다”며 “입학 당시보다 학업 수준이 매우 향상돼 평가 때마다 100점을 기록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어 “매번 성실하게 일찍 등교해 수업을 준비하고 맡겨진 활동이나 과제도 포기하는 일 없이 모두 열심히 수행했다”며 “읽기 표현이 어려울 때도 적극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해 언어표현 능력이 많이 향상됐다”고 밝혔다.

졸업식 최고령인 김옥순(93) 씨는 “졸업 후 기회가 된다면 불우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싶다”라며 “전업주부로 5남매와 손녀딸 둘까지 다 키운 뒤 이제는 내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3년간 중학교 과정을 마칠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과 학교 관계자들에게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김씨는 “선생님들도 다 저보다 20살은 어린데 너무 잘 해주시고 엄마라고 불러주며 저를 챙겨줬다”며 “이제는 전철, 버스로는 학교 다니기가 어려운 나이인데 아들과 며느리가 3년간 학교까지 차를 태워준 덕에 (학업을) 잘 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1900여명이 학력 인정 문해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올해는 69개 기관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교육청은 보다 많은 성인 학습자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상급학교 진학을 지원할 예정이다.

박상혁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은 졸업자들에게 큰절하며 “행사장에서 손자들과 사진을 찍는 어머님, 아버님의 행복한 모습이 감동적이었다”라며 “과거의 삶과 세상이 어려워 배움의 시기를 놓쳤지만 배움에 대한 용기와 의지로 끝까지 프로그램을 이수하신 어르신들께 존경과 축하의 박수를 보내드린다”고 전했다.
축사에 나선 정근식 서울교육감은 학사모와 졸업가운을 입은 채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끝까지 학업을 마친 학습자들의 열정과 의지에 깊은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며 “여러분이 걸어온 모든 과정이 이미 삶의 훌륭한 이야기로 자리 잡았음을 기억해 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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