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평균 환율 수준만 됐어도 4.3만불인데
금융위기 때보다 더 폭락한 원화 가치에 물거품
올해 연초부터 1400원대 원/달러 환율 이어져
1인당 GDP ‘4만달러’ 시대 환율 흐름에 달려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지난해 환율이 2021년 수준만 됐어도 ‘국민소득 4만불 시대’가 이미 달성됐을 것으로 분석됐다. 비상계엄 여파 등으로 원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국민소득도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다.
더 큰 문제는 올해다. 지난해는 연말에 고환율 영향이 몰려 있어 연평균 환율 자체는 1300원대를 나타냈다. 그런데 올해는 연초부터 1400원을 넘어서는 환율이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자연히 하락하기 어려운 환경이 펼쳐지고 있다.
원화, 금융위기 때보다 더 폭락…고환율로 놓쳐버린 ‘4만불’
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연평균 원/달러 환율은 1363.98원에 달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격탄을 맞은 1998년(1398.88원)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1300원대 중후반대 환율을 기록했다. 금융위기(2009년·1276.40원) 당시보다 확연히 높다.
원화 가치 폭락은 국민 소득 수준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약 3만6000달러로 추계됐다. 이는 지난해 경상 GDP 예상치(2542조8596억원)를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상 총인구(5175만1065명)와 작년 평균 원/달러 환율로 나눠 구한 값이다.
즉, 지난해 환율이 2021년(1144.42원) 수준만 됐어도 1인당 GDP는 약 4만3000달러로 급증할 수 있었다. 고환율로 인해 7000달러 가량의 국민 소득이 증발한 셈이다. 통상 원/달러 환율의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졌던 1200원만 기록했어도 4만1000달러는 기록했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특히 일본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지난해 IMF 추정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1인당 GDP는 3만2859달러에 불과했다.
일본은 유일하게 우리나라보다 통화 실질 가치가 더 절하된 나라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12월 말 실질실효환율 지수는 91.03으로 일본(71.3)에 이어 두 번째로 낮다.
올해는 상황이 더 암울하다. 지난해 환율은 비상계엄 사태 영향을 받은 12월에 고환율 효과가 몰려 있어 연간 환율 수준 자체는 1300원대에서 유지됐지만, 올해는 연초부터 1400원대 고환율이 계속되고 있다.
1월 평균 원/달러 환율은 이에 1455.79원에 달했다. 지난해 12월(1434.42원)과 비교해도 20원 이상 더 높다.
미국發 관세 불확실성 여전…올해는 환율 더 높아질 수도
앞으로 환율이 내려갈 것이라고 예단하기도 어렵다. 관세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여전히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물가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 금리 인하가 어려워진단 얘기고, 이는 곧 달러 강세를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4.25~4.50%로 유지했다. 이후에도 연준 인사들은 앞다투어 ‘트럼프 불확실성’을 거론하며 금리 인하를 서둘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스틴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3일(현지시간) 아메리칸 퍼블릭 미디어의 마켓플레이스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이 다시 시작될 위험이 있기 때문에 금리를 얼마나 빨리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조금 더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25% 전면 관세 시행을 하루 앞둔 3일(현지시간) 한 달간 전격적으로 유예하면서 관세 전쟁 우려는 다소 낮아진 상태다. 다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진 누구도 예상하기 어렵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김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높은 변동성을 보일 수 있다”며 “결국 앞으로도 살얼음판 걷는 상황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도 “우리나라가 금리를 많이 내리기 어렵다”며 “저성장의 고통을 국민이 상당히 겪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