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한 2심 재판에서 19개 혐의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이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을 부당 합병하고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지만 단 하나도 유죄로 인정되지 않았다. 이로써 불법 승계 의혹과 국정농단 사태 등 2016년부터 10년째 계속된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사실상 일단락됐다. 이제 불확실성을 걷어내고 글로벌 경쟁력을 되찾기 위한 본격 행보에 나서야 할 때다.

검찰은 작년 2월 이 회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항소심에서 2144건에 달하는 추가 증거를 제출하고, 같은해 8월 서울행정법원이 ‘2015년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하자 공소 사실을 추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들을 종합해 볼 때 2015년 회계 처리에 (분식 회계 등) 고의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1·2심 재판부가 한목소리로 위법도 주주 손해도 없었다고 본 것인데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는 비판을 면키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가는 혹독했다. 지난 10년간 이 회장이 사법 족쇄에 묶여있는 동안 글로벌 시장은 빠르게 재편됐다. 승부처인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선 경쟁사에 밀리고 파운드리에선 작년 하반기부터 매 분기 ‘조(兆) 단위’ 영업적자다. 스마트폰과 가전 시장에선 각각 애플, LG전자 등 전통 강자의 공세와 중국의 추격에 샌드위치 신세가 됐다. 무엇보다 AI(인공지능)등 기술 패러다임이 바뀌는 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 뼈아플 수 밖에 없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가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던 상황과 딴판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다시 기술 리더십을 회복하는 것이다. 삼성이 과거 ‘초격차’ 전략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리더십과 미래를 향한 과감한 투자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런 혁신 DNA가 흐릿해졌다. 주력인 반도체 기술도 의심받고 있고, AI·로봇 등 미래 기술과 관련해선 누구도 삼성을 ‘글로벌 리더’로 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도널드 트럼프발 반도체 관세 전쟁도 예고된 상태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하나 둘이 아니다.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연구 개발 투자와 대형 인수합병(M&A) 등 특단의 전략이 필요하다.

마침 이 회장은 방한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와의 회동을 무죄 판결 후 첫 대외행보 일정으로 잡았다. AI가 산업 지형을 모두 바꾸는 상황에서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이를 AI 혁신의 신호탄으로 삼아야 한다. 빠른 결단과 실행력만이 위기에서 벗어날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