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선원전 편액 [국가유산청]
경복궁 선원전 편액 [국가유산청]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검게 옻칠된 바탕에 금빛으로 새겨진 글자 ‘선원’(璿源)이 조선 왕실의 유구한 뿌리를 한껏 뿜어낸다. 테두리를 연장한 봉에는 격식 높은 양식을 보여주는 구름무늬가 조각돼 있다. 선원은 ‘옥의 근원’이라는 뜻이다. 중국 역사서 ‘구당서’에서 왕실을 옥으로 비유한 데서 유래했다.

역대 왕들의 초상화를 예를 갖춰 봉안하던 궁궐 내 건물의 ‘이름표’가 마침내 일본에서 돌아왔다. 3일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라이엇게임즈의 후원을 받아 경복궁 선원전(璿源殿)에 걸렸던 것으로 추정되는 편액을 환수했다고 3일 밝혔다. 일제강점기 때 조선 땅을 떠나 사라진 문화유산으로 보인다.

편액은 종이나 비단, 널빤지 등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방 안이나 문 위에 걸어 놓는 액자를 일컫는다. 이번에 고국 땅을 밟게 된 편액은 가로 312㎝, 세로 140㎝ 크기로 조선 후기에 제작됐다.

경복궁 선원전 편액 테두리 봉에 장식된 구름무늬 조각 [국가유산청]
경복궁 선원전 편액 테두리 봉에 장식된 구름무늬 조각 [국가유산청]

이 편액은 조선시대 궁궐 안에서도 가장 신성한 공간으로 여겨졌던 선원전 편액으로 분석된다. 선원전은 역대 왕의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봉안하고 왕이 분향, 참배 등 의례를 행하던 곳이다. 조선은 충과 효를 통치의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이처럼 위계 높은 전각을 세웠다. 실제 조선 왕실은 경복궁, 창덕궁, 경운궁(지금의 덕수궁)에 선원전을 각각 뒀다. 임금이 거처를 옮기면 역대 왕들의 어진도 각 궁궐에 있는 선원전으로 함께 옮겨 예를 갖췄다.

각 궁궐의 선원전 건립 및 소실과 관련한 정황, 경복궁 재건 공사가 기록된 ‘경복궁영건일기’(景福宮營建日記) 등 관련 문헌 기록 등을 고려하면 1868년 재건된 경복궁 선원전에 걸렸던 편액으로 추정된다.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창덕궁의 옛 선원전의 경우 현재 편액이 남아있지 않으나 편액을 거치하는 철물 흔적의 위치와 환수 유물의 크기 등을 비교한 결과, 이번에 환수한 편액과 맞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편액에 남아있는 글씨가 서승보(1814~1877) 쓴 것으로 추정되면서 경복궁 선원전 편액이라는 연구에도 힘이 실린다.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 각종 행정 사무 등을 기록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따르면 1868년 재건한 경복궁 선원전 편액은 서승보(1814~1877)가 글씨를 썼다고 돼 있다.

경복궁 선원전 편액 바탕판 [국가유산청]
경복궁 선원전 편액 바탕판 [국가유산청]

오늘날에는 창덕궁에만 두 곳의 선원전이 남아있다. 1444년 처음 지은 최초의 경복궁 선원전은 임진왜란 때 전소됐다. 이후 100여년간 궁궐 안에 선원전을 건립하지 못하다가 1695년에 이르러 창덕궁에 선원전을 마련하고 어진을 봉안한 것이 지금의 구 선원전이다. 고종 때 경복궁이 재건되면서 경복궁에도 선원전이 만들어졌지만,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훼철돼 서울 장충동에 있던 박문사(博文寺)를 짓는데 사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7년 고종이 머무르면서 건립된 경운궁 선원전 편액은 화재로 소실됐다. 1901년 재건한 경운궁 선원전 편액은 1921년 창덕궁으로 옮겨졌고 이것이 지금의 창덕궁 신 선원전이다.

한편 경복궁 선원전 편액은 라이엇게임즈의 지원으로 고국 땅을 밟게된 7번째 환수 문화유산이다. 라이엇게임즈는 2012년 국가유산청과 협약을 맺은 이래 보물로 지정된 ‘문조비 신정왕후 왕세자빈 책봉 죽책(竹冊)’, ‘석가삼존도’ 등의 환수를 도왔다. 국가유산청과 재단은 이달 27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편액 실물을 언론에 최초 공개할 예정이다.


dsu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