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공격에 상대국 보복…관세 전쟁 시작

세계경제 질서였던 자유무역 시대 저무나

대한민국 경제 키워온 수출…최악 위기 직면

달러 강세 현상 장기화, 환율 1470원대 터치

내수 위기에도 기준금리 내리기 더 힘들어져

미국이 촉발한 관세 전쟁으로 우리나라 성장 동력인 수출이 크게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컨테이너 터미널에 수출 대기 중인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있는 모습. 인천=임세준 기자
미국이 촉발한 관세 전쟁으로 우리나라 성장 동력인 수출이 크게 위축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컨테이너 터미널에 수출 대기 중인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있는 모습. 인천=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홍태화·정호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관세전쟁’에 한국 경제가 직격탄을 맞을 위기에 놓였다. 약 30년 간 세계 경제의 질서였던 자유무역이 붕괴될 경우 수출로 경제를 키워온 우리나라는 거대한 성장 동력을 잃게 된다. 내수 경기가 이미 최악인 가운데 수출마저 무너지면 1%대 저성장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관세가 불러오는 달러 강세로 환율 리스크는 더욱 확대되고, 기준금리 인하 제약도 거세질 전망이다. 가뜩이나 경기 부양이 시급한 한국 경제 입장에서는 사면초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수출 450억弗 감소 가능성…중국과 경쟁도 심화

미국 관세 부과에 캐나다가 즉각 보복 관세로 응하며 관세 전쟁이 실제로 펼쳐지자 전세계 교역이 크게 위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1월부터 수출 증가 흐름이 멈춰 대외 여건이 더욱 악화되는 양상이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의 1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은 491억2000만달러로 작년 동월 대비 10.3% 감소했다. 2023년 10월부터 15개월 연속 플러스 행진을 이어온 우리나라 수출의 성장이 멈췄다.

설상가상으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미국이 한국을 포함해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주요국이 맞대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면 한국 수출이 최대 448억달러 감소할 수 있다고 봤다.

현 상황이 최악의 시나리오에 맞춰 흘러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의 관세전쟁 영향으로 대미수출이 8%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면서 “직접적인 관세영향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글로벌 교역이 축소하면서 중간재 등 무역도 줄어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도 “그간 무관세 혜택을 누려온 멕시코와 캐나다에 국내 기업도 주력해왔지만, 관세 전쟁으로 우리나라도 타격을 피해갈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중국 간의 수출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날 보고서에서 “미국의 관세 부과로 중국이 더 과잉 생산에 나서고, 중국 기업 수출이 다른 국가들로 선회할 경우 글로벌 수출시장에서 (중국 기업과) 우리나라와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우려가 있다”고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 일별 매매기준율 추이
원/달러 환율 일별 매매기준율 추이

더 커진 고환율 부담…내수 위기에도 금리 인하 어려워

관세 전쟁에 상승 기세가 한풀 꺾였던 원/달러 환율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장보다 13.3원 오른 1466.0원으로 거래를 시작했다. 이후에도 오름세를 키워 오전 장중 한때엔 1470원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달러인덱스는 2일(현지시간) 오후 7시 33분 기준 109.56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주 장 마감 이후 108 초반대를 오가던 것에서 급등했다.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 내 물가 부담이 올라간다. 금리 인하가 어려워지고, 이는 달러 강세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목표 범위를 연 4.25~4.50%로 유지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이와 관련 “우리는 통화정책 기조 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라고 말했다. 오는 3월 금리 인하를 여전히 고려 중이냐는 질문에도 “통화정책 기조 변화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도 직접 거론했다. 그는 “관세·이민·재정정책, 규제와 관련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알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대외여건은 다시 달러 강세로 흘러가는 모양새다. 중장기적으로 달러 가치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커졌고, 자연적인 환율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안동현 교수는 “수출 부진으로 성장률이 타격을 입게 되면 경기가 둔화해 금리를 낮춰야하는데, 미국의 관세전쟁은 필연적으로 미국내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기준금리를 높일 우려가 크다”면서 “성장은 부진한데 금리는 낮추기 어려워진 한국은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9시 1분 기준 코스피 지수가 50.71 포인트 하락한 2466.66 포인트, 원달러 환율이 17.30원 상승한 1470원을 나타내고 있다. 임세준 기자
3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9시 1분 기준 코스피 지수가 50.71 포인트 하락한 2466.66 포인트, 원달러 환율이 17.30원 상승한 1470원을 나타내고 있다. 임세준 기자

경기부양, 원화절하 사이 통화당국 고민

우리나라 통화당국 입장에선 과감하게 기준금리를 인하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미 미국보다 1.50%포인트나 낮은 기준금리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 홀로 금리를 낮추게 되면 원화 체력은 더 약화할 수밖에 없다.

미국 금리 인하가 다시 속도를 내지 않는다면 우리나라도 속도조절이 불가피한 셈이다. 앞선 1월 13일 기준금리 결정 때도 높은 환율과 미국의 매파적 금리 기조가 금리 인하를 막았다.

시장에서는 이에 금리 인하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다만, 경기가 워낙 안 좋은 만큼 2월 금리 인하는 예상대로 단행한 뒤 추이를 볼 가능성이 아직까진 높다.

지난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애초 한은 전망치(2.2%)보다 0.2%포인트나 낮은 2.0% 성장하는 데 그쳤다. 특히 4분기 성장률(전분기대비)은 저조한 건설투자(-3.2%) 등의 영향으로 0.1%에 불과했다.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하는 상황에서 2월 금리까지 시장 예상과 달리 묶으면 자칫 경기를 살릴 기회를 놓칠 수 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이창용 한은 총재도 2월 인하를 사실상 시사했고, 현재 내수 침체에 일단은 인하로 기운다”고 전망하면서도 “미국은 하반기에 오히려 금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어 “(인상 시)우리나라가 금리를 많이 내리기 어렵고, 저성장의 고통을 국민들이 상당히 겪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