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기 ECB총재·몬티 伊총리·마크 카니 신임 영란銀총재 등 골드먼 출신…경제회복 위한 공격적 통화공급 주도에 인플레 확산 우려
최근 마크 카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가 318년 역사의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차기 총재에 지명되자 파이낸셜타임스 등 영미 언론들은 영국이 처음으로 외국인 중앙은행 총재 시대를 맞이했다며 영국 정부의 혁신 의지를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금융시장 전문 매체들은 카니의 영란은행 총재 시대를 다른 시각에서 조명했다.
바로 미국 금융기관에 이어 유럽중앙은행(ECB), 그리고 영국 중앙은행 총재까지 월가의 투자은행인 골드먼삭스 출신이 장악했다는 사실이다.
영란은행과 함께 유럽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골드먼삭스 인터내셔널 부회장 출신이다. ECB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역임하며 유로화 창설을 주도했던 오트마 이싱은 골드먼삭스 고문을 맡고 있고, 이탈리아 마리오 몬티 총리도 골드먼삭스 인터내셔널의 고문 출신이다. 몬티는 지난주 사임의사를 밝혔지만 유로존 내에서 신임이 두터워 차기 총선에 나설지를 고민 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골드먼삭스 출신은 이미 지난 4월 사임한 그리스 총리 루카스 파파데모스 역시 골드먼삭스에서 ECB 부총재를 거쳤다. EU 집행위원을 지낸 아일랜드의 피터 서더랜드 전 검찰총장 역시 골드먼삭스 인터내셔널의 회장을 지냈고 아일랜드 구제금융 과정에서 골드먼삭스와 긴밀하게 협력했다고 알려졌다.
골드먼삭스는 미국에서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로버트 루빈 전 골드먼삭스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로버트 루빈이 재무장관으로 한시대를 풍미한 데 이어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는 헨리 폴슨 전 CEO가 재무장관을 맡았다. 지금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역시 루빈의 발탁으로 장관에 오른 루빈 사단의 일원이다. 또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에 이어 2인자 자리인 뉴욕 연방은행의 윌리엄 더들리 총재도 골드먼 맨이다. 부시 행정부에서는 조수아 볼튼 백악관 비서실장까지 골드먼 출신이어서 백악관 고위각료회의가 곧 골드먼 동창회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월가의 민간 투자 은행 한 곳이 이렇게 자국 정부의 금융 정책 수뇌부를 장악한 데 이어 유럽중앙은행들까지 장악한 경우는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골드먼삭스가 서방 금융시장을 장악한 데는 세계 최고의 금융기관인 골드먼 출신들의 뛰어난 업무 능력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골드먼 출신들에게 보이지 않는 손이 이들의 앞길을 끌어준다는 음모론이 나올 법하다. 골드먼삭스는 국제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월가 유태인 자본의 대명사로 군림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음모론의 막후 진실보다 당장 골드먼삭스 출신들이 서구 금융 정책을 좌지우지하게 되면서 향후 통화정책에 중대한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점쳐진다.
바로 유럽의 양대 중앙은행이 미국 연방준비제도처럼 돈을 마구 살포하는 양적 완화에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미국 연준은 지난 12월 12일 내년부터 매달 450억달러어치씩 장기 채권을 추가로 매입하는 QE4를 단행한다고 밝히면서 실업률 6.5%로 내려갈 때까지 초저금리와 양적완화를 지속한다는 획기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연준 역사상 처음으로 조건부 양적완화라는 새로운 정책 지평을 열었다는 자평이지만 이는 뒤집어 말하면 더 이상 시한을 제시하지 않고 될 때까지 무제한 돈을 찍어내겠다는 무기한 QE 조치이다.
인플레이션 부작용과 달러 기축 통화 붕괴를 우려해 조심스러웠던 기존의 행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가 회복될 때까지 달러를 찍겠다는 선언이다.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돈살포가 한 차원 더 위험한 단계로 접어든 셈이다.
미 연준에 이어 이에 동참할 조짐을 보이는 게 바로 카니의 영란은행이다. 내년 7월 영란은행 총재에 취임하는 카니는 지난 10일 “인플레이션보다 전반적인 경제성장률에 목표를 맞춰 통화 정책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미 연준처럼 목표 성장률을 이룰 때까지 돈을 찍겠다는 의미이다. 머빈 킹 현 영란은행 총재는 이런 공격적 경기부양책을 인플레이션 유발을 우려해 반대해왔는데 카니가 입성하면 영란은행도 다시 양적완화 정책을 재개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과 영국이 돈을 더 푼다면 드라기의 ECB 역시 더욱 공격적인 돈풀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드라기 총재는 지난해 말 취임하자마자 남유럽 재정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ECB의 구제 금융 및 경기 부양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채권 매입을 통해 ECB 돈을 풀어 유로존 은행과 남유럽 재정위기 국가들을 지원해왔다. 드라기의 전임자였던 장 클로드 트리셰 초대 ECB 총재는 퇴임할 때까지 ECB의 양적 완화를 거부하고 중앙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에 초점을 맞췄었다. 하지만 드라기 총재는 취임 이후 금융시장에 ‘버냉키 풋’ 못지않은 ‘드라기 풋’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돈을 풀어왔다.
ECB 총재에 영란은행 총재까지 골드먼 출신이 포진하면서 새해에는 서방 은행들의 돈풀기가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돈풀기가 지속되면 서구 경제권도 일본처럼 돈을 살포해도 실물 경제는 디플레이션에 빠지는 유동성 함정에 빠질 우려가 커진다. 하지만 투자 은행 출신의 중앙은행 총재들은 자칫 발권 화폐제도 자체의 붕괴를 몰고올지도 모를 돈살포 경쟁을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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