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올해는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과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전 세계적 열풍 등 우리 문화의 저력을 보여주는, 기분 좋은 일들이 잇따라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런데도 18대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에서는 문화예술 정책 관련 공약과 토론은 거의 없었다. 경제와 남북문제, 교육 등에 밀려 문화예술 문제는 소홀히 다뤄져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지금은 문화경제 시대, 창의경제 시대다. 문화산업의 경쟁력이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18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차기 정부 문화예술 정책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강남스타일’ 열풍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화 콘텐츠가 갖는 파급력은 어마어마하다. 올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수가 지난 11월 21일자로 1000만명을 돌파했다. 이렇게 된 요인으로는 환율가치 하락, 일본 지진 등에 따른 중국 관광객 증가 등이 꼽히지만 K-팝(Pop) 한류가 더 크게 기여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방문의해위원회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벌인 이벤트 중에서도 ‘K-팝 커버댄스 페스티벌’이 가장 큰 반응이 나왔다.
▶바뀌는 한류문화 패러다임에 걸맞는 문화예술 정책이 필요 문화예술, 특히 대중문화가 유통되고 소비되는 패러다임은 급격히 변화를 겪고 있다. 굳이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글로벌화’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바뀌고 있는 환경 변화에 걸맞게 대중문화 예술 정책들도 변화해야 한다. 문화정책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면 예산을 낭비하기 쉽다.
대중음악에서도 이미 아이돌 가수만으로는 안 된다는 말이 나왔다. ‘만들어진 한류’로는 계속 호응도를 높이기는 어렵다. 과거 방식은 대표 상품을 뽑는 식이었다. 스포츠에서도 대표 선수를 뽑아 태릉선수촌에 집어넣어 엘리트 선수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오랫동안 지속됐다. 태릉선수촌 역할을 대중음악계에서는 대형 기획사들이 해왔다. 그러는 사이, 다양한 개성과 캐릭터가 자신의 역량을 펴보일 기회가 줄어들었다. 이들이 경쟁력이 없는 게 아니다. 음악 시장에서는 이들에 대한 수요가 생기고 있다. 음악 오디션들이 시즌을 거듭하면서 찾아내려는 콘텐츠도 바로 이들이다. ‘K팝스타 2’의 악동뮤지션이 한 예다. 기자는 2년 동안 KBS ‘탑밴드’ 전문심사위원으로 참가해 100여개팀을 심사해봤는데 인디밴드 속에도 역간의 변화만 가해지면 경쟁력이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험성과 재기 발랄함을 갖춘 이들이 대중과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우리가 좋아해야 미국과 유럽도 좋아한다.
대중문화는 미디어와 연계가 안 되면 살아나기 힘들다. 지상파가 시장에서 팬덤과 인기가 많거나 제작진이 좋아하는 가수 위주로 내보내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 지상파가 이런 작업을 소홀히 하다가는 시청자로부터 외면받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류는 편향된다. 이미 시청자는 자신들이 좋아하는 매체와 플랫폼을 찾아나서고 있다. 싸이는 새로운 한류 방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동안의 잘못된 유통 방식을 드러내줬다. 싸이는 방송을 통해 화제가 된 게 아니다. 유튜브다. 문화는 물꼬가 막히면 다른 곳을 찾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음악공연장 설치도 중요하지만 누가 무대에 서는지도 중요 대중음악 전용 공연장인 서울 올림픽공원 내 올림픽홀의 좌석 수가 부족하니까, 1만5000석 규모의 공연장을 설치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공연장 설치는 중요하다. 하지만 누가 무대에 설 것인지도 생각해야 한다. 다양한 아티스트와 대중이 소통하는 통로가 되지 않고 몇몇 한류 가수만이 이용한다면 오히려 문화의 다양성은 사라진다.
윤종신이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1990년대 초반 김원준 김완선 등에 TV 출연 기회가 밀려 유희열 등과 ‘다운타운’에서 활동하는 가수가 됐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다운타운은 택시기사에게 물어보면 어딘지 모른다고 했다.
그 ‘다운타운’에서 활동하는 아이들을 발굴하고 알려지게 해야 한다. 다운타운에는 제2의 싸이가 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자신의 세계와 색채를 분명하게 갖추고 있는 애들이다. 이들이 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대중과 소통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런 정책과 기능이 없는 건 아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루키를 지원하고 EBS ‘스페이스 공감’이 헬로루키 공연을 열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출과 고용 창출을 위해 잘나가는 몇몇 기업 위주로 지원하는 시대도 있었다. 이들 기업이 물건을 팔아내면 재투자가 이뤄지는 톱다운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 고리가 끊어졌다.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다. 이들 기업이 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이나 동남아에 공장을 세워 내수도 시원치 않다.
문화산업과 한류도 마찬가지다. 드라마 하나 잘된다 싶으면 그들만 지원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드라마 제작에 관여하는 스태프도 잘돼야 한다. 올해 대선 최대의 화두는 경제민주화였다. 문화예술 정책에도 적용될 만하다.
▶문화예술 정책은 양과 질도 함께 추구해야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창작자가 안정되게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이 연장선에서 지난달 예술인복지법, 일명 ‘최고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70억원이라는 예산으로 54만명의 예술인을 어떻게 지원할지 의문이다.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시행 중인 문화바우처 제도는 수혜 대상자가 늘고 있다. 문화 소외계층에 대한 공연과 전시 관람, 스포츠 수강과 관람, 여행 관련 경비 지원은 문화민주화와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필요한 제도다. 하지만 ‘행복’과 ‘욕망’이 아니라 ‘공짜’이기 때문에 문화바우처를 이용한다면 만족도는 반감된다. 사람마다 문화적 취향은 천차만별이다.
이처럼 문화예술 정책은 ‘양’의 문제만이 아니다. ‘질’도 고려해야 한다. 국가예산을 문화예술 정책에 많이 사용하기는 힘들다. 거의 모든 정책이 예산을 늘리면 효과도 올라가지만 문화는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문화 정책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정책이다. 문화는 사람을 느긋하고 여유를 가지게 만든다. 서로의 차이와 개성을 인정해 소통도 강화시켜 준다. 돈이 없어 외출을 하지 않는 노인에게 돈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문학 강좌를 듣게 하는 것도 문화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서병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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