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민상식기자]“연탄을 때도 전기 장판을 켜도 추위 견디기가 힘드네요. 언제 쫓겨날지 몰라서 그런가 봐요.”
기온이 영하 10도로 내려간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판자촌 ‘구룡마을’은 얼어붙은 듯 고요했다. 마을은 온통 눈으로 덮였고 길을 지나는 주민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곳곳에 가득 쌓여 있는 연탄재다.
구룡마을 1100여 가구 가운데 500여 가구가 연탄을 난방수단으로 사용한다. 김공순(85) 할머니도 연탄을 땐다. 김 할머니는 선교사였던 아들이 지난해 세상을 떠나면서 손자 강모(18ㆍ고교 3학년) 군과 함께 판잣집에서 살고 있다.
김 할머니는 “하루에 연탄 3장을 때는데 외풍이 세 전기장판을 켜야 한다. 옷을 껴입고 이불을 덮어도 추위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김 할머니가 정부로부터 매달 받는 돈은 25만원 남짓. 기초수급생활자 지원금 17만원과 기초노령연금 8만원이 전부다. 이것도 손자의 휴대전화비와 전기세 5만원 등을 내고나면 남는 게 없다. 김 할머니는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매일 동네 폐품을 주워 파는데, 이 마저도 구하기 쉽지 않아 한 달 벌이가 4000원가량이다.
현재 살고 있는 집에서도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김 할머니는 “집 주인이 하루가 멀다하고 방에서 나가라고 해 쫓겨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참 살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구룡마을에서 그나마 형편이 좋은 주민들은 기름보일러를 사용한다. 이 마을에서 홀로 사는 송경식(67) 씨는 “기름보일러가 있지만 기름값이 아까워 낮에만 조금 돌린다. 그런데도 판자집이 단열이 안돼 한 달 기름값이 18만원 정도다. 정부에서 매달 주는 35만원 중 절반이 난방비로 사용된다”며 답답한 마음을 드러냈다.
마을에 도움을 주는 단체가 간혹 있다. 며칠 전에는 사랑의 연탄 나눔운동 봉사단체에서 마을주민들에게 연탄을 200장씩 나눠줬다.
구룡마을 주민자치회 관계자는 “예전보다 좋아진 게 요즘에는 전기세를 못낸다고 한겨울에 전기를 끊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만 추워지면 수도관이 얼어 터지는 것은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구룡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또 다른 판자촌이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4동 1244번지(포이동 266번지) 판자촌인 ‘포이동 재건마을’이다.
재건마을은 지난해 6월 대형화재로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집 70가구가 전소됐다. 초등학생의 불장난으로 발생한 불이 판자촌을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화재 이후 포이동 주민들이 많이 떠나갔다. 94가구에서 현재 72가구로 줄었다. 불이 난 곳에는 시민단체들이 조립식 주택 45동을 지어줬다. 나무 판자집도 여전히 27가구나 남아있다.
가건물에 보금자리를 겨우 마련한 주민들은 추위가 다가오면서 난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마을 주민 가재웅(55) 씨는 “난방은 각자 사정에 따라 다르지만 도움을 받아서 하는 사람이 있고, 자체적으로 기름보일러를 돌리는 주민도 있다”면서 “그러나 주민들 모두 난방비를 아끼려고 온도를 낮춰서 살고 있다”고 밝혔다.
가 씨 역시 아끼면서 기름보일러를 사용하지만 난방비가 한 달에 20만원 정도 나온다. 그는 “가건물이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난방하기도 힘들다”면서 “수도관이 동파하는 것 역시 겨울마다 겪는 연례행사라 익숙하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화재 뒤 전기선로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주민들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곧 철거될 곳이라는 이유로 전기시설이 임의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임대주택 건설계획을 두고 해당 구청이 재건마을 주민들의 이주를 요구하고 있는 데다 서울시와 재건마을의 조정회의마저 최근 중단됐다.
재건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포이동 266번지 사수 대책위원회’ 관계자는 “주민들이 협동조합형태의 공동체 마을 건설을 요구하고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기회만 되면 우리를 내쫓을려고 한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