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그들의 겨울은 추웠다 <1> 꽁꽁 얼어붙은 인력시장

외환위기때보다 뚝 떨어진 일감 “허탕치는 날 처자식 볼 면목이…”

가톨릭복지법인 무료 밥차엔 일거리 못찾은 인부들만 북적

하도급업체선 임금 떼이기 일쑤 “현장서 다쳐 치료비나 받았으면”

초(初)겨울인데, 한겨울 같다. 옷을 몇 벌씩 껴입어도 한기가 가시지 않는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날선 추위는 영혼마저 얼어붙게 할 기세다. 인력시장의 한파는 더 깊다.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1인당 국민소득이 늘고 국내총생산(GDP)은 성장한다는데, 왜 이럴까. 중산 서민층이 느끼는 경제 체감온도는 15년 전 IMF 외환위기 때보다, 5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더 낮다. 여느 겨울보다 유난히 추운 올겨울. 헤럴드경제는 중산 서민층의 고단한 삶을 3회에 걸쳐 돌아본다.

7일 새벽 4시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 초겨울이라지만 기온이 섭씨 영하 10도까지 떨어져 세상이 꽁꽁 얼어붙었다. 오늘 하루라도 일자리를 얻겠다고 나선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섰다.

밤사이 한파 특보가 확대된 10일 기온이 서울 영하 12도 가까이 떨어진 가운데 경기침체로 구로동 인력시장에 새벽부터 나온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감이 줄어들어 더 춥게 느껴지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2012.12.10
흔들린다, 몸도 마음도 눈빛도 그리고 불빛도.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추워도 일만 할 수 있다면 견딜 수 있겠건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10일 새벽 서울 구로동 인력시장을 찾은 일용직 근로자들의 모습이다. 체감온도는 시베리아 날씨보다 낮다. 언제나 따뜻해지려나. 이들을 찍는 사진기자의 손도 흔들린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밤사이 한파 특보가 확대된 10일 기온이 서울 영하 12도 가까이 떨어진 가운데 경기침체로 구로동 인력시장에 새벽부터 나온 일용직 근로자들이 일감이 줄어들어 더 춥게 느껴지고 있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2012.12.10 흔들린다, 몸도 마음도 눈빛도 그리고 불빛도.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추워도 일만 할 수 있다면 견딜 수 있겠건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 10일 새벽 서울 구로동 인력시장을 찾은 일용직 근로자들의 모습이다. 체감온도는 시베리아 날씨보다 낮다. 언제나 따뜻해지려나. 이들을 찍는 사진기자의 손도 흔들린다.  박현구 기자/phko@heraldcorp.com

마른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겠다는 사람들. 몇 년 전 건설경기가 좋을 때만 하더라도 새벽에 나오면 봉고차를 타고 어딘가로 이동해 오후 6시까지 땀을 흘리고 일당을 받았다. 일당으로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에 참치캔이라도 넣은 김치찌개를 끓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뭐가 잘못된 것일까. 요즘은 도통 일이 없다. 허탕치기 일쑤다. 1997년 외환위기 때도 절반 이상은 일감을 찾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인부들 대부분이 선 채로 기다리다 씁쓸히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1주일 새 세 번밖에 일을 찾지 못했다는 김진수(55) 씨는 “추위를 뚫고 인력시장에 나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날이 많아 한숨만 나온다”며 “일당도 쥐지 못하고 돌아가 처자식을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인력시장에서 20여년째 전기기술자로 살았다는 박현욱(65) 씨는 “아무리 어려운 때도 전기기술자로 현장에 나가면 일당 10만원은 거뜬히 벌었는데, 요즘에는 일 자체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김선권(56) 신세계인력 소장은 “일자리도 줄었지만 경기가 안 좋아져서 그런지 올들어 임금체불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다.

무료로 노동자들에게 밥을 나눠주는 ‘빨간 밥차’. 서울시와 구로구 서울가톨릭사회복지법인에서 운영하고 있다. 자원봉사자인 김형주 씨는 “밥을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으면, 그만큼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라며 “IMF 때도 150여명을 넘지 않던 밥차 이용자가 요즘은 170여명으로 불어났다”고 말했다.

7일 오전 4시30분께 서울 용산구 한강로1가의 한 인력사무소 앞 풍경도 비슷하다.매서운 한파 속에 일거리를 찾아 나온 10여명이 서성이고 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일만 할 수 있으면 그래도 행운이지만, 여의치 않다.

김용수(43) 씨는 “이번 주 내내 나왔지만 한 번밖에 일을 잡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용접이나 미장이같이 기술 있는 사람들은 물론,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종종 나온다”며 “나처럼 나이도 있고 기술 하나 없는 사람들은 현장보조 자리만 노리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력사무소 관계자는 “날씨가 추워지면 공치는 사람들이 많다”며 “사는 일이 버거운 사람들은 ‘차라리 일하는 현장에서 다쳐 치료비나 받았으면 좋겠다’고 울먹일 때가 있다”고 귀띔했다.

부동산시장 침체가 건설사의 경영난으로 이어졌고, 이는 곧 2, 3차 하도급업체에 직격탄을 날렸다. 하도급업체에서 일하는 인부의 상당수는 임금을 떼여 발을 동동 구를 때가 많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노동자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박병국ㆍ서상범 기자/ cook@heraldcorp.comㆍtiger@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