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여성 전문 평생교육기관’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이선재 교장… ‘한국의 페스탈로치’로 산 50년 교육인생
집안의 맏딸로 태어났다. 부모님을 도와 동생들을 보듬고 살피느라 초등학교 이후 공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교복을 입고 책을 읽는 평범한 여중생의 꿈은 마음속 깊이 미뤄뒀다. 밤낮으로 공장에서 일하며 집 뒷바라지를 해야 했다.
어느 틈에 벌써 수십년이 지나갔고 꽃다웠던 10대 소녀는 주름이 서글한 중년 여성이 됐다. 흘러온 세월에 지워질 만도 하건만 ‘배움의 꿈’은 점점 더 짙어졌다. 쉬운 영어 단어도 읽지 못하는 못난 자신을 혹시나 주변 사람들에게 들킬까 ‘몰라도 아는 척’ 보내온 수십 년의 세월, 어느새 그 꿈은 한(恨)이 됐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과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배움의 한을 평생 가슴에 담고 산 우리네 어머니들의 평범한 이야기다.
이 같은 한을 마음에 담고 산 4만9000여명의 주부가 지난 50년 동안 서울 마포구 염리동 언덕을 올랐다. 경사 각도가 30도는 족히 될 듯 한 언덕을 올라 굽이굽이 이어진 골목길을 따라가면 이들의 한을 꿈으로 바꿔준 ‘희망의 학교’가 자리한다. 국내 유일의 ‘성인 여성 전문 평생교육기관’ 일성여자중ㆍ고교, 양원 초등ㆍ주부학교다.
지년 동안 이 희망의 공간이 자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4만9000개의 꿈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기던 한국의 ‘페스탈로치’ 이선재(76) 교장이 있었다.
#‘야학’ 이끌던 피란민 출신 청년운동가
내년이면 ‘희수(喜壽)’를 맞이하는 이 교장은 지난 50년의 세월을 배움의 기회가 제한된 이웃들을 위한 교육 기회 제공에 힘써왔다. 그 시작은 1960년, 당시 26세 청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6ㆍ25전쟁 당시 남쪽으로 피란을 오며 가족과 헤어진 이 교장은 당시 자신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이들의 선의에 보답하기 위해 야학을 열었다.
당시 그가 회장으로 활동하던 청년 친목단체 ‘마포청년동지회’의 동료들과 함께 시작한 야학은 가정 형편 등으로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배움의 기회를 제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