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경찰서 대학생-學暴 가해청소년 멘토링 그룹 ‘도니모’ [헤럴드경제=박수진ㆍ정태란 기자] “형, 나 열쇠가 꽂혀있는 오토바이를 훔칠 기회가 있었는데, 그냥 뒀어요. 잘했죠?”
지난 30일 서울 대흥동 이화여대 인근 한 피자집에서 만난 정모(14ㆍ서울 A중 2학년) 군은 오랜만에 만난 멘토 신정우(25ㆍ연세대 경영) 씨를 보자 연신 신나는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천진한 표정으로 “형이 너무 좋다”며 웃어 보이는 정 군. 하지만 사실 정 군은 지난 7월 전까지 유흥비를 벌기 위해 동급생이나 후배들의 돈을 갈취하던 이른바 ‘문제 학생’ 이었다.
가출이 잦았고 학교도 결석하기 일쑤였다. 지난 5월에는 한 동급생을 폭행해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정 군을 안타깝게 여기던 경찰은 지난 7월 결성된 서울 서대문경찰서 대학생 멘토링 그룹 ‘도니모’를 정 군에게 소개했다.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멘토링 모임에 열심히 참석하는가 싶더니 지난 9월께 다시 연락이 끊겼고 이후 10월15일 특수절도 사건의 미검자 명단에서 이름이 발견됐다. 결국 정 군은 보호관찰 중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다시 감별소에 수감됐고 지난 19일 ‘장기보호관찰 2년’ 판결을 받고 석방됐다.
아직까지 주변의 관심과 조언이 필요한 정 군. 그에게 가장 의지가 되는 사람은 멘토 신 씨다. 석방 이후 신 씨가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형들이랑 같이 피자도 먹고 영화도 보지 않겠냐”고 물었고 정 군은 지난 30일 오랜만에 즐거운 나들이를 했다.
정 군 뿐만이 아니다. 한 때 학교폭력 가해자였던 청소년 9명이 이날 신 씨를 비롯한 대학생 멘토 11명이 서울 서대문경찰서 청소년계 소속 경찰 4명과 함께 일명 ‘피자 번개’를 했다.
이들은 학교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 서대문경찰서ㆍ서대문구청ㆍ서부교육지원청이 업무협약(MOU)을 통해 지난 7월 마련한 대학생 멘토링 프로그램 ‘도니모’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대학생과 학교폭력 가해학생 간 1:1 멘토ㆍ멘티제를 운영하며 유대감을 돈독히 해 학교폭력 등 재(再)비행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현재 대학생 멘토 24명, 청소년 멘티 29명이 활동 중이다. 지난 9월에는 체육대회도 했다. 멘토ㆍ멘티 간 개별적인 만남은 수시로 이뤄진다.
프로그램이 진행된 지난 5개월 동안 유의미한 변화들이 있었다. 멘토들은 꾸준히 전화나 문자를 통해 연락하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개별적인 만남도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멘토의 문자에 답장 한 번 하지 않던 아이들이 요새는 먼저 연락을 해온다. “나를 아껴주고 믿어주는 사람이 생겼다”는 것이 아이들을 변화토록 한 가장 큰 힘이다.
대학생 멘토로 활동 중인 이태현(22ㆍ이화여대 철학2) 씨는 “아이들이 단 번에 변화하지는 않죠. 하지만 점차 마음을 여는 것이 느껴져요. 이젠 아이들이 제 상담을 해주기도 할 정도에요”라고 말했다. 문현우(25ㆍ 경기대 관광경영4) 씨는 “함께 어울리는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인줄 아는 경우가 많아요.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주선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합니다”고 말했다.
대학생 형, 누나들과의 시간은 아이들에게 이제까지 갖지 못했던 꿈을 선사하기도 한다.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던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갖고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한 것. “넌 잘 될거야” “무엇이든 할 수 있어”라는 말 한마디가 아이들의 꿈을 키우고 있다.
동급생들에게 상습적으로 현금을 갈취하다 스스로 경찰에 자진 신고를 하면서 ‘도니모’ 활동을 하게 된 김모(15ㆍ서울 B중 3학년) 군은 최근 영어 공부에 재미를 붙이며 개인 과외까지 받고 있다. 그는 “일주일에 2회, 4시간씩 영어 공부를 한다. 아직 성적이 많이 오르진 않았지만 공부를 하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멘토인 김문식(28ㆍ연세대 경영) 씨를 따라 대학 강의를 청강하기도 한다. 꿈을 갖게 해주려는 김 씨의 배려다.
김 군은 “형이랑 헤어지고 집에 들어오면 어김없이 전화가 와요. 오늘 어땠는지, 집에는 잘 들어갔는지를 물어봐줘요. 항상 고마워요.”라고 말했다.
황의연 서울 서대문경찰서 청소년계장은 “앞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소규모 모임도 계속 진행할 예정이다. 대학생 멘토들과 함께 하는 학습 멘토링도 계획 중에 있다. 청소년들이 멘토링을 통해 학교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