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5회> 붉은 태양을 따라서 4

술이나 한잔 합시다!

남자들 사이에서 이 말이 오갔다면 더 이상 묻거나 따지지 않겠으니 함께 일합시다! 하고 의기투합한 것을 의미한다. 유호성은 이처럼 단순한 것이 매력이자 흠이었다. 그는 자신을 ‘사나이’라고 여겼으므로 단칼에 매듭을 잘라내었다.

룸살롱이 될지, 혹은 요정이 될지… 그를 태우고 가는 메르세데스 벤츠 600의 뒷좌석에서 유호성은 몇 시간 전의 일을 반추하고 있었다.

오후 4시쯤이나 되었을까? 평양에서 중국 베이징을 거쳐 비행기를 갈아타고 귀국한 직후였으므로 아직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그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전화를 건 장본인은 자칭 유민그룹의 차기 회장, 다름 아닌 어머니 신희영이었다.

“아들?”

“네, 어머니세요? 어쩐 일이에요?”

“어쩐 일? 미친 녀석, 얼빠진 놈.”

“왜 그래요, 또. 짜증나게시리.”

“짜증이 나? 미친 놈. 짜증은 네 아버지에게나 부리고… 지금 당장 서초동 전속변호사 사무실로 오너라.”

시작부터 욕과 짜증이 뒤범벅되었으니 대화가 곱게 오갈 리 없었다. 더구나 신희영의 말엔 생선가시와도 같은 날카로움이 비비 꼬여 있질 않은가.

“변호사 사무실엔 왜요?”

“네 녀석이 죽은 뒤에 네 소유의 강남 아파트 두 채와 현금 7억원이 든 통장을 내게 위탁한다는 서류에 도장이나 찍어.”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죽긴 누가 죽어?”

“네 놈이 죽는단 말이다. 랠린지 지랄인지… 자동차 타고 하필이면 사막엘 왜 가? 텔레비전에서 보면 사막 한가운데에 짐승들 죽은 뼈다귀가 지천이지 않던?”

“에이, 재수 없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 오간 대화가 무려 30분이었다. 그동안 죽음이라든지, 해골, 뼈다귀 등등, 가만히 듣고만 있어도 소름 끼칠 만한 단어가 무려 수십 차례나 거론되곤 했다. 신희영이 아들 유호성과의 대화를 그토록 거칠게 이끌어 간 것은 이를테면 작전이었다. 강준호가 기획하고 신희영이 각색한 신출귀몰한 작전!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신희영의 폭언에 화가 잔뜩 난 유호성은 그녀보다도 먼저 서초동 전속변호사 사무실에 도착해서 준비된 서류에 도장부터 꽈당! 찍어대고야 말았다.

“이게 아닌데… 이걸 어쩌지요?”

뒤늦게 강준호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에 도착한 신희영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재산위탁관리 서류를 들여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나 강준호는 이게 웬 떡이냐! 싶었다. 한동안 다툼이 오간 후에야 겨우 도장을 찍으면 다행이라고 여겼는데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홀랑 도장부터 찍어놓고 홀연히 떠나버린 유호성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잘된 겁니다, 신 여사! 호성이가 지금은 방방 떠도 곧 마음이 돌아설 거예요. 저도 생각이 있겠지. 이런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서 찝찝해하지 않을 까닭이 있나?”

메르세데스 벤츠 600은 보기보다 시트가 편치 않았다. 과속방지턱을 넘어서는지 울컥하고 치닫는 통에 유호성은 감았던 눈을 떴다. 잠이 들었던 것일까? 혹은 어머니 신희영의 폭언을 꿈속 일로 여기고 싶었던 것일까? 메르세데스 벤츠 600이 멈추어 선 곳은 예상대로 간판부터 휘황한 요정의 주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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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