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피고인이 사건 당일 폭행당했다는 것을 증언해 줄 증인을 신청합니다.”
지난 20일 서울중앙지법. 내연남을 칼로 찔러 살해한 여성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진행되고 있었다. 내연남의 심한 폭행에 방어하기 위해 칼을 들었다 실수로 살해했다고 주장한 피고인 측은 사전에 검사 측과 협의되지 않은 증인을 신청했다. 검사는 “반대 신문 준비가 돼 있지 않다”며 반발했다. 결국 증인은 채택되지 않았고 피고인은 정당방위를 입증하지 못해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증인 신청이 받아들여졌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반 국민의 법감정에서 판단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이 오히려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약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단기간에 무리하게 재판을 끝내려다보니 나타난 문제점이다.
현행 국민참여재판은 1~3일의 짧은 기간 동안 매일 재판을 진행해 선고를 내리는 방식으로 시행되고 있다. 일손을 놓고 재판에 참여해야 하는 배심원들이 한 번에 끝낼 수 있는 일정을 원하고, 또 재판정 바깥에서 배심원들의 신변이 위협을 받는다거나 평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보안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단기간에 재판을 끝낼 경우 돌발 상황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앞서 사례처럼 양측이 협의하지 않은 증인이 재판 당일 신청된다든지, 재판 당일 신문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경우 현행 방식으로는 달리 조치를 취할 방법이 없다. 이미 선임한 배심원이 있기 때문에 보통의 재판처럼 기일을 연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변협 노영희 대변인은 “사전에 충실히 준비한다 하더라도 재판에서는 언제든 예측못한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며 “하루에 몰아서 처리하는 현행 방식은 제대로 된 심리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참여재판 하면 언제나 붙는 ‘밤샘 재판’이라는 꼬리표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최근 제주도 올레길 살해사건에 대한 국민참여재판이 새벽 2시에 선고가 난 것을 비롯해, 상당수의 국민참여재판은 장시간의 집중심리 끝에 늦은 밤 선고가 난다. ‘마라톤 재판’에 배심원은 물론 재판부의 집중력도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재판이 길어져 배심원 평결이나 재판부의 숙의 시간이 새벽에 이뤄지면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국민참여재판의 본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단기간에 재판을 마무리 하는 현행 방식을 고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재협 교수는 “국민참여재판은 시행된 지 5년밖에 안돼 아직 부족한 점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향후 제도화 과정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을 피고인의 권리 등을 고려해 기일을 나눠서 하는 방법을 충분히 검토해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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