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한대·몇초의 시간만 있으면 뒤집히는 세상 일부선 ‘미확인 폭로’로 정치·연예인들 ‘주홍글씨’ 낙인도
폭로, 세상을 바꾸는 힘인가, 주홍글씨의 낙인인가. 지난 2010년 4월,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제목의 비디오 파일이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 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라왔다. 이라크에서 양민과 기자들이 미군에 의해 살해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었다. 그해 6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7만6900건의 미국 기밀문서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공개됐다. ‘위키리크스’는 이를 포함한 일련의 폭로로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해온 미국 정부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겼다.
워싱턴포스트에 의해 이뤄진 40년 전 ‘워터게이트 사건’의 폭로는 취재뿐 아니라 보도의 공익성을 검토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위키리크스’의 거대한 폭로에 필요했던 것은 컴퓨터 한 대와 몇 분 몇 초의 시간뿐이었다. 위키리크스는 세상을 바꾸는 폭로의 힘과 더불어 시대에 따른 변화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폭로’는 거대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며 불의를 바로잡는 수단이 돼왔다. 힘없는 약자들이 권력과 기득권층에 대항해 맞설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이기도 했다. 한국 현대사도 길목마다 사회를 들썩이게 하고 세상을 변화시켰던 굵직한 폭로사건이 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박종철 고문치사 폭로(1987년)는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가 됐다. 윤석양 이병의 양심선언(1990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폭로(1993년)도 역사의 거센 물줄기 속에서 터졌던 대형사건이었다.
거대집단이나 권력에 대한 폭로는 최근 들어 인터넷 및 스마트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과 결합돼 일상화ㆍ집단화되는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언론이나 힘없는 개인뿐 아니라 이른바 ‘집단지성’ 혹은 ‘다중지성’이 폭로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위키리크스의 경우 특정 전문가 몇 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학자, 기자, 해커, 벤처기술자 등 익명의 다수가 참여한 집단에 의해 정보 수집과 공개가 이루어진다. 2008년의 미국 소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어떤 의미에선 정부ㆍ경찰과 이에 대항한 시위참여 시민들의 상호 ‘폭로전’이었다. 특정되지 않은 익명의 각 분야 전문가나 네티즌들이 각자의 정보와 지식을 자발적으로 공유하고 확대해가며 광우병에 대한 정부의 주장이나 시위 양상에 대한 경찰의 발표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새로운 사실들을 끊임없이 ‘폭로’해 갔다.
영화 속에서 흔히 묘사되듯 위성, 전자카드, CCTV, 유ㆍ무선 통신네트워크는 권력이 개인을 통제하는 거대한 ‘판옵티콘’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사방에 존재하는 스마트폰과 휴대용 카메라, 인터넷, 모바일은 권력의 횡포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눈’이 되기도 한다. 국가적 보안시설을 무방비로 노출시킨 구글의 위성지도 논란에서 보듯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기존의 국가 기밀과 국민의 알 권리, 정보의 독점과 공유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폭로는 거대 권력이나 기득권 집단을 향할 때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지만, 힘없는 개인을 향할 때는 끔찍한 인권 침해의 결과를 낳기도 한다. 특히 기업가나 정치인에게는 오히려 관대하고 일반인이나 대중스타들에게 더 높은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에서 무분별한 폭로는 한 개인을 재기불가능한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주홍글씨의 낙인이 되기도 한다. 연예스타들에 대한 무분별한 사생활 폭로나 하루가 멀다 하고 인터넷을 뒤흔드는 ‘지하철 ××녀’ 같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