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대한민국 해군의 첫 구축함인 충무함(DD-91) 등 6.25 전쟁 이후 미 해군함정 30여척을 지원해 한국 해군의 현대화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 전 해군참모총장 고 알레이 버크 제독의 흉상이 진해 해군사관학교에 전시된다.
해군은 15일 진해 해군사관학교 통해관에서 최윤희 해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알레이 버크 제독 흉상 제막식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이날 제막식에는 백선엽 예비역 대장, 초대 해군참모총장 손원일 제독의 부인 홍은혜 여사, 알레이 버크 제독이 자신의 한국인 아들이라고 부를 만큼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박찬극 예비역 준장(해사 3기ㆍ86세) 등 해군 예비역 장교, 해군 주요 지휘관, 해군사관생도와 주한 미해군사령관 등 주한 미해군 관계자 등 120여명이 참석한다.
행사 참석자들은 알레이 버크 제독이 생전에 해군사관학교에 기증한 도서와 관련 사진 등 역사기록 전시물을 관람하는 시간도 가질 계획이다.
흉상은 6.25전쟁 6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해군 정비창에서 제작했으며, 가로 57㎝, 세로 35㎝, 높이 90㎝ 크기의 청동 흉상이다.
알레이 버크 제독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함대에서 구축함전대장과 기동함대 참모장으로 참전하여 전공을 세우고, 임기 2년의 해군참모총장을 3번이나 연임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특히 그는 1949년 항공모함 건조계획을 폐지시킨 미 국방부 결정에 항거한 ‘제독들의 반란(Revolt of Admirals)’에 적극 동참, 해군참모총장 시절 원자력 잠수함 건조사업을 추진하고 초대형 항공모함을 11척이나 건조하는 등 냉전시기 세계최강의 해군력을 건설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해군은 1991년 세계최강의 성능을 자랑하는 이지스 구축함 1번함 함명을 알레이 버크함으로 제정해 그의 공적을 기린 바 있다. 생존인물의 이름을 함명으로 제정한 것은 미 해군 역사상 알레이 버크 제독이 처음이다.
우리 해군의 세종대왕급 이지스구축함도 알레이 버크함과 동형 함정이다.
또 제독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동부전선에서 함포사격을 적극 지원해 승리에 기여했고,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안보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6.25전쟁시 미 극동해군사령부 부참모장, 제5순양함분대사령관, UN군측 정전대표로 참전하며 우리나라 안보에도 지대한 공헌을 한 그는 1951년 초 우리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해 열악한 도서관을 보고 미 해군 기관지에 도서기증을 호소하는 글을 기고, 2만여 권의 도서를 모아 한국 해군사관학교에 기증하기도 했다.
제5순양함분대사령관 재임 시절 연락장교로 파견 온 한국 해군의 위관장교들이 미 해군의 작전과 교리, 무기체계, 장비운영 등 함정 운영체계를 습득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연락장교들이 당직근무를 겸직하는 한편, 이들이 충분한 교육을 받고 돌아갈 수 있도록 파견 연장을 요청하기도 했다.
알레이 버크 제독이 승함한 LA함 연락장교였던 박찬극 예비역 준장은 이때 그와 인연을 맺었다. 자녀가 없던 버크 제독은 박 제독을 한국의 아들이라며 미 해군 장성들에게 친분을 맺어주고 한국해군 함정 대여사업 등에서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
그가 해군참모총장으로 재임했던 1955년 8월부터 1961년 8월까지 미 해군 함정대여에 관한 한미협정에 따라 경비함, 상륙함, 호위구축함, 고속수송함 등 32척의 함정을 한국 해군에 제공해 한국 해군의 전력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퇴임 후 한국해군 구축함 도입에 관한 함정대여 법안이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부결되자 예비역 신분이던 그는 상원의원과 보좌관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구축함 대여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68년 서울함과 부산함 등이 한국 해군에 인도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