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7회> 사랑을 위한 의식 (25)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무릎 위로 40cm에 달하는 핫팬츠는… 패션용어로 핫팬츠일 뿐이지 북한 군중들, 특히 북한여인들의 심정적인 용어로는 ‘빤스’나 다름없었다.
집에서는 몸뻬바지, 일터에서는 재건복, 기껏 출퇴근 때에야 중국에서 땡처리로 들여온 화학섬유제품 무릎치마를 입던 그녀들이 보기에 강유리의 빨간 핫팬츠야말로 얼빠진 처자들이 걸친 빤스와 다름없더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거 내레… 눈이 뒤집히갔시오.”
“내레 고조 심장이 벌렁벌렁 뛰누만.”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무릎 위로 40cm라는 말은… 핫팬츠 바짓단의 길이가 겨우 한 뼘 남짓하더라는 말과 다름없었으니, 신장 170cm를 훌쩍 넘는 그녀의 쭉 뻗은 맨다리를 날로 보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니,
‘벌렁벌렁, 쿵닥쿵닥…’
그들에게서는 심장 뛰는 소리밖엔 들을 수 없었다. 그들이 누구냐고? 물론… 강유리를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 안에 있는 모든 남자들이었다.
“이상으로서 전 세계 여자 프로꼴푸 2012 겨울대회 개막을 선언하는 바입네다!”
당 서열 9위 간부의 개막연설이 끝나자 선수들은 정해진 조에 따라 팀을 이루기 시작했다. ‘가나다’ 순으로 팀이 정해졌기 때문에 강유리 선수는 제1조에 편입되었다. 억지를 부리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이를테면 폴라 크리머 선수는 ‘ㅍ(피읖)’으로 시작되니 맨 끝 조에 편입되는 식이었다.
“외국선수들은 이니셜의 알파벳순으로 분류해야 옳지 않습니까? 다른 대회처럼 성적순으로 조 편성을 하든지 해야지요.”
이렇게 따져 물어봐야 돼지에게 다이어트 강의하는 것과 같았다. 이를테면 엿장수 마음대로였는데, 그린피와 참가비도 나라마다, 팀마다, 선수마다 각각 다르게 매겨져 있었으니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예를 들자면… 평상시 북한 당국에서 받아오던 평양골프장의 그린피는 100달러였으나 폴라 크리머는 이번 대회에 한 게임당 150달러를, 그러나 강유리는 300달러를 지불해야만 했던 것이다.
어째서 비싼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지 까닭도 모른 채 ‘시설 사용료’ 명목으로 300달러씩 내야 했으니 사흘에 걸쳐 치러지는 이번 대회에서 그린피만으로 900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해서 99만원을 지불한 셈이었다. 게다가 참가비로 낸 500만원을 더하면 생으로 들어간 돈이 600만원에 달했다.
“자, 제1조… 제1조는 저기 다람쥐 표시를 한 밀차를 따라가시라우요. 저 여성동무가 1타격대로 모실 거외다.”
강유리는 북한식 카트인 밀차 위에 오르면서도 연신 유호성을 찾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드디어 골프대회가 시작되는 이 순간, 이 드넓은 곳에 그녀는 혼자 버려진 느낌이었다.
원래 평양골프장은 파 72에 18홀 규모로서 전장 6,271미터짜리 국제규격 코스였다. 18홀 중에서 여덟 홀이 호수를 끼고 있기에 경관이 수려했다. 코스는 대부분 평탄하지만 선수를 유혹하는 블라인드 홀이 무려 네 홀이나 되는 골프장이었는데… 그걸 거성그룹에서 36홀로 증설해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었다.
‘아빠, 이제 어쩌지요?’
비록 혼잣말이었으나… 그녀가 도움을 청한 사람은 신희영도 아니고 매니저도 아니었다. 신희영의 정부노릇을 하며 철저히 신분을 속이고 있는 제 아버지, 강준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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