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4회> 사랑을 위한 의식 12
“제임스 리 박사는 우리 거성에서 개발 중인 X-호크를 군용으로 바꿀 수 없게 된 걸 축하하려고 북한을 방문한 것뿐입니다.”
“그래요? 그런데 어째서 권 전무께선 방금 N-Dos단에서 마수를 뻗친 게 확실하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아, 그거야…그 친구들을 미워하던 습성 때문입니다. 축하사절단을 보내는 것도 결국 마수를 뻗친 것과 같은 셈이지요, 뭐.”
백마-월정 고속도로 개통식에 관한 보고사항은 대충 이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재벌2세의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언젠가 권도일이 이스라엘에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계의 높은 양반과 만난 적이 있었는데…그날 높은 양반은 권도일이 이스라엘에서 벌인 행각이 왠지 수상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고속도로 개통이 잘 되었다니 안심입니다. 건설장비 철수 등등 후속업무에 신경 쓰라고 지시해주세요. 그리면 이제…골프대회 개막식 장면 좀 볼까요?”
재벌2세는 손수 컴퓨터에 외장 하드를 갈아 끼우기 시작했다. 평소 똑바로 앉은 자세에서 보고를 받기만 하던 때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그의 관심은 어느새 골프대회 개막식에 초대 받은 강유리의 복장에 머물고 있었다.
“이 여자가 강유리 선수예요? 어째 신문에 실렸던 사진과는 모습이 많이 다른데요? 화장을 짙게 해서 그런가요?”
“글쎄요, 제 눈에는 별로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만.”
“북한에 이런 복장으로 들어갔단 말입니까? 빨간색 핫팬츠…이건 뭐야? 금속으로 만든 티셔츠입니까?”
“네, 강유리 선수가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워낙 롱다리에 짧은 치마나 핫팬츠를 즐겨 입어서 남자들 얼을 빼놓곤 하지요.”
“북한도 많이 변했어요. 이런 복장을 허용한 채로 개막식을 개최하고 동영상 촬영까지 허락하다니….”
재벌2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영상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캐리 웹, 크리스티 커, 제니퍼 로자레스, 폴라 크리머, 로레나 오초아, 아니카 소렌스탐…. 쟁쟁한 여섯명의 LPGA 선수와 약간 전투적으로 생긴 북한 골프선수의 모습이 차례로 화면 위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 뒤로는 이미 가마니처럼 누렇게 잔디빛이 바랜 페어웨이가 아스라이 드러나 보였는데, 아무리 북한에서 내세우는 평양 골프장이라 한들 초겨울의 스산한 정경을 떨쳐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정은 위원장도 바쁘군. 고속도로 개통식에 참석하랴, 골프대회 개막식에 참석하랴. 하긴 하나는 거액의 돈을 쏟아 부은 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계적인 미녀 선수가 모이는 대회이니 참석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재벌2세는 이렇게 말하며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하지만 권도일은 차마 그를 따라서 웃을 수 없었다. 차례차례 LPGA 선수의 모습을 훑어가던 카메라가 어느덧 다른 참석자를 비추고 있었는데, 그 한쪽 구석에 휠체어에 앉은 후밍 박사의 모습이 담겨있었기 때문이었다. 후밍 박사….
서요르단 이스라엘 점령지역, 에이발 산에서 파리아 강으로 이어지는 계곡 언저리 휴전선 인접지역에서 비밀리에 성능테스트를 하던 ‘에어 뮬’의 드라이버였던 후밍 박사가 흴체어에 앉아있는 모습이 분명했다. 하지만….
“됐어요. 이까짓 골프대회야 어찌 되든 말든, 우리 책임은 끝났으니 더 이상 관심 없습니다. 고속도로도 잘 개통되었으니 다행이고요. 이제 우리는 곧 시작될 5개국 관통 랠리대회에 모든 관심을 쏟아 부어야만 합니다.”
후밍 박사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재벌2세는 손바닥을 탁탁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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