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1회> 모든 길은 하나로! (40)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걔들이 ‘백마 월정로’를 뚫어 달래요? 백마리는 어디고 월정리는 정확히 어딥니까? 전화 끊지 말고 잠시 기다리세요. 마침 회의테이블 유리판 밑에 커다란 지도가 깔려있으니 그리로 가서 전화 계속합시다.”

권도일의 전화를 받은 재벌2세는 갑자기 마음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북한 측으로부터 요구사항이 생겼다는 것은 협상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전초전이었다. 이제부터 협상은 흥미진진하게 벌어질 터였다.

“신의주 바로 인접해서 백마리가 있습니다. 서울에 비하자면 판교, 분당쯤에 해당된다고 여겨주세요. 그곳이 시발점인 셈이고요… 중간 기착지 월정리는 바로 판문점 옆에 딸린 작은 마을입니다.”

“중간 기착지? 기착지라면… 목적지로 향하는 도중에 잠깐 들르는 곳을 일컫는 말 아닌가요? 월정리가 종점이어야 논리에 맞지 기착지라니요?”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북한 애들이 심정적으로나마 종점으로 여기는 곳은 바로… 부산이랍니다.”

“그래요? 기가 막히네요. 그냥 웃어넘길 수도 없는 일이고 시비를 붙을 수도 없는 일이고… 하여간 걔들은 이상해요. 그런 건 전화로 할 이야기가 아니고… 가만 있자, 찾았습니다. 신의주 옆 백마리, 그리고 판문점 아래 월정리… 꽤 긴 거리군요. 이 구간을 뚫어서 길을 내준다는 건 좀 무리 아닐까요?”

“아닙니다. 길을 뚫자면 한이 없지요. 기존의 국도가 멀쩡하게 있습니다. 다만 그 길이 군데군데만 포장이 되어있고 대부분은 비포장일뿐더러 노폭도 좁다는 게 문제지요. 북한 측에서는 이 길을 편도 6차로 씩, 왕복 12차도로가 될 수 있도록 포장해달라는 겁니다. 물론 아스팔트 포장입니다.”

“그래요? 기존 도로가 뱀처럼 구불거리지는 않습니까?”

“다행히 해안과 평야를 끼고 이어진 길이 많아서 심하게 구불거리지는 않습니다만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길이라…”

“형편없이 낡았다는 말씀이군요. 잘 알겠습니다. 잔뜩 겁을 먹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는 그리 큰 요구도 아니군요.”

“그렇게 여겨주시니 다행입니다. 하여간 이 친구들은 왕복 12차로에 달하는 고속도로를 내주면 1차적으로 랠리카를 통과시켜준 이후에 그 길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답니다. 말이라도 군사용으로 쓰지는 않겠다고 하니 기특하지만…”

“허허허, 기특하긴 하네요. 12차 대로를 깔아놓고 관광도로 용으로만 쓰겠다니 그걸 믿으라는 건지 뭔지.”

“그래도 대화하는 방식이 예전보다는 훨씬 부드러워졌어요. 이번 5개국 관통 랠리대회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고무적입니다.”

“알았습니다. 좋다고 하십시오. 이미 왕회장님을 모시고 이사회를 연 바 있는데… 그 자리에서 이번 사안에 소요될 예산 확보를 폭 넓게 해놓았습니다. 다행히 북한 측의 요구가 우리가 확보해놓은 예산 범위에 수용되는 군요. 고생하셨습니다.”

재벌2세와 권도일 간에 이루어진 긴급통화는 불과 5분 안에 끝났다. 그토록 빠르게 통화를 마쳤다는 것은 북한 측의 요구를 거성그룹에서 대번에 수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남은 문제는 굳이 거성의 왕회장이나 재벌2세와는 협의할 의무가 없었다. 남쪽의 인력을 동원해야 할지, 아니면 인건비로 계산해서 북한 측에 돈으로 때워야 할지… 하여간 넘어야 할 산은 많았다.

권도일은 기나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반신반의했지만 만약 이번 일이 성사되지 않았다면 북한 측에 체포되어 갖은 고생을 할 수도 있었으므로…

그러나 정작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은 거성그룹 회장으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대선주자였다. 남북화합을 모토로 내건 뒤에 공교롭게도 지지율이 떨어져 고심하던 차에 북한 영내로 랠리카를 들여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큰 호재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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