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생생뉴스] 삼성그룹 경영권 편법 승계 논란의 출발점이 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에 대해 이건희(70) 삼성전자 회장이 결국 민사상이나마 책임을 지게 됐다. 장하성 고려대 교수 등 제일모직 주주 3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의 항소심 판결에 대해 이 회장 측이 상고를 포기함에 따라 130억 배상 책임을 안게 된 것이다.
17일 삼성그룹 및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이 회장 측은 상고 시한인 지난 12일까지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하지 않아 2심 판결이 확정됐다.
1996년 10월, 중앙일보, 제일모직 등 당시 에버랜드 주요 주주들은 주당 7700원이라는 헐값에 발행된 에버랜드 CB 인수를 포기했다. 당시 에버랜드 적정 주식가치는 주당 22만3000원 정도로 추정됐다. 이재용(44) 삼성전자 사장 등 이 회장의 자녀들은 이 CB를 인수함으로써 편법적으로 재산을 상속받고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2000년 법학교수 43명이 이러한 의혹에 대해 고발장을 제출했지만 검찰은 수사를 미적댔고, 2007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 이후 개시된 삼성특검의 수사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삼성특검은 CB 인수를 포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무혐의로 결정한 채, 헐값 발행 부분만을 기소했다. 대법원은 이마저도 “에버랜드 이사회 결의를 거쳐 CB를 이재용 등에게 배정한 것은 주주들 스스로가 인수청탁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때문”이라며 “에버랜드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무죄 선고하며 형사적 책임을 면제해 주었다.
이번에 판결이 확정된 소송은 경제개혁연대가 주축이 돼 2006년 4월 이건희 회장 등 당시 제일모직 전현직 이사와 감사를 상대로 민사적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 제일모직이 에버랜드 CB 인수를 포기하지 않았을 경우 얻을 수 있었던 이익인 137억여 원을 손해배상해달라는 것이 청구 취지였다.
항소심을 맡았던 대구고법은 지난 8월 22일 이러한 손해를 인정하며 “CB 발행은 처음부터 조세를 회피하고 에버랜드에 대한 지배권을 이재용 등에게 넘기기 위한 목적으로 피고 이건희와 그 지시를 받은 비서실을 통해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재용 사장으로의 지배권 승계 과정이 ‘유죄’라 할 수는 없어도, 이건희 회장과 삼성그룹 비서실이 조직적으로 개입한 배임행위에 의한 것임을 법원이 최종적으로 확인해준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17일 논평을 통해 “이제껏 단 한 번도 삼성 측이 스스로 소송을 중간에 접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상고 포기라는 법률적 행위마저도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며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라는 시대적인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변화의 시작으로 해석하고 싶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