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사실 요즘처럼 전세계적으로 경기 침체가 심화되는 시점에 기업들에게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내년까지도 경제위기가 계속될 듯해 기업들이 당장은 지갑을 열지 않을 것같습니다. 걱정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 효과와 가치를 이해하는 기업들이 속속 느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단기적 투자가 아니라 장기적 투자로 생각하고, 꾸준히 제대로만 지원한다면 얼마든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두산그룹 회장을 역임하면서 이를 느꼈고요.”

올 2월 사단법인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에 취임한 박용현 전 두산그룹 회장이 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들과 처음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문화예술에의 지원은 당장 효과를 볼 순 없으나 장기적으론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희 두산그룹은 소비재에서 산업재로 주력 분야를 바꾸면서 문화예술계와 한동안 소원했더랬습니다. 그러다가 몇년 전부터 연강재단을 통해 현대미술 등 문화예술계를 지원하고 있는데 단박에 그 효과가 드러나진 않더라고요. 헌데 저희 기업에 들어오려는 대학생들을 면접해보니 두산아트센터와 두산갤러리 등을 이야기하면서 그룹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참 반갑더라고요. 땅에 물이 스며들듯 조용하지만, 장기적으론 기업 이미지와 브랜드 이미지를 좋게하는데 그 어떤 것보다 긍정적인 파급력을 미치는 게 바로 ‘문화예술과의 협력’이구나 절감했죠".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박용현회장 기업의 문화예술투자
박용현, 두산그룹 (회장)/박용현회장 기업의 문화예술투자

박용현 메세나협의회 회장은 "기업들이 문화예술 지원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려면 CEO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메세나협의회는 CEO포럼 등 CEO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강연과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최할 것입니다. 그래야 어려운 가운데도 기업들이 문화예술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원하겠지요"라고 밝혔다.

이어 "올해와 내년에는 세계 경기침체가 더 심화될 것 같아 메세나협의회를 맡은 사람으로써 어깨가 무겁습니다. 그런데 이런 때일수록 문화예술계를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에서의 지원은 더욱 더 돋보일 테니까요"라며 "문화예술계를 꾸준히 지원하는 기업들에겐 정부가 좀더 전폭적으로 혜택을 주고, 칭찬도 듬뿍듬뿍 해주는 환경과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번 회기에서 통과가 안됐던) 메세나법이 19대 국회에서 꼭 통과될 수 있도록 저부터 발벗고 뛰겠습니다. 문화예술계를 지원하는 기업들에겐 좀더 실질적인 혜택을 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국가적, 예술적 경쟁력을 높이는 일인 동시에, 정부가 해야할 일을 기업들이 맡아서 하는 것이니까요"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경기중고와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를 거쳐 서울대병원장을 역임한 의학자 출신이다. 그러다 지난 2007년 가업(家業)인 두산그룹으로 돌아와 두산그룹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리곤 이번에 기업과 문화예술계간 가교 역할을 담당하는 한국메세나협의회 회장직을 맡게 된 것. 의료계-기업을 거쳐 이제는 그 자신 문화예술계 인사가 된 셈이다.

"전임 박영주 회장(이건그룹 회장)님으로부터 메세나협의회 회장직을 제안받고 펄쩍 뛰었더랬죠. 전 적임자가 아니라고 몇번이나 고사했습니다. 문화예술 쪽엔 완전 문외한이었으니까요. 의과대학 시절에 음악반, 미술반을 기웃거리긴 했지만 소질이 없음을 절감하고, 음악 감상만 즐겼던 완전 초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턱하니 맡게 됐습니다. 맡고 보니 주위에 전문가 뺨치는 기업인들이 많아 면구스러울 지경이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박 회장은 두산그룹 내 두산아트센터와 두산갤러리 등이 조성된 뒤론 예술가들과 즐겨 만나고, 미술전시장도 틈 나는대로 찾는 애호가이다. 뉴욕을 찾을 때는 두산갤러리(뉴욕에도 두산갤러리가 조성돼 있다)는 물론, 아트페어 현장도 둘러보고 참신한 현대미술의 세례를 듬뿍 받곤 한다. 또 지난달에는 스위스의 바젤 아트페어를 찾았고, 바로 어제도 ‘두산갤러리(종로5가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1층 소재) 재개관전’에 참여하는 작가들과 식사를 같이하며, 현대미술 등을 주제로 진솔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작가들을 후원하는 차원에서 작품을 수집하기도 하느냐고 묻자 "이따금씩 젊은 작가 작품을 사곤 합니다. 두산갤러리에서도 사고 있고요. 물론 삼성미술관 리움 등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죠. 그러나 두산그룹은 100년, 200년이상 지속될 기업이니 지금 젊은 아티스트 작품을 사두면 훗날 큰 문화적 자산이 되지 않겠습니까?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 이렇게 길게 생각하고 차근차근 시작한다면 큰 부담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형편 닿는대로 조금씩 시작했으면 합니다"며 말을 맺었다. 사진제공=한국메세나협의회

/yrle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