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경과 죽음의 작가 클로비스 트루이유’(Clovis Trouille, au vit, a la mort)
화가 클로비스 트루이유(Clovis Trouille)에 대해 사람들은 가터벨트를 걸친 성직자, 무덤에서 전화를 거는 팜므파탈 이미지를 떠올린다. 생동감 넘치는 그의 채색화들은 사상의 자유를 강조한다. 사상의 자유와 당연히 짝을 이루는 포옹의 자유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클로비스 트루이유는 음경, 엉덩이, 젖가슴, 성행위, 그리고 매음굴이나 수도원과 관련된 유쾌한 이미지들을 그려내고 있지만, 그가 강조하는 것이 성은 아니다. 무엇보다 진정한 자유인, 바꿔 말해 ‘절대자유주의자’의 생기발랄하고, 지칠 줄 모르며 거역할 수 없는 에너지를 그린다.
열렬한 무신론자인 클로비스 트루이유는 여기 그리고 지금 살아있다는 즐거움을 우리와 공유하려 애쓴다. 그러기에 화가는 천국보다 그룹섹스를 더 좋아한다. 그의 그림들은 ‘오! 캘커타! 캘커타!(O! Calcutta! Calcutta)’라는 제목이 암시하는 것처럼 종종 노골적인 말장난을 구사한다.
프랑스어로 ‘켈퀴타(quel cul t`as)’로 발음해주기를 원하면서 말이다. 번역하자면 ‘너의 엉덩이는 예쁘기도 하지’라는 의미다. 그에게 인간의 몸은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
“나는 어두운 예술, 저주받은 자라는 이미지를 좋아하는 대신 부르주아 사회의 도덕, 종교의 위선, 성직자들의 모럴, 애국적 정서를 거부합니다.” 무정부주의자이고, 독학으로 그림을 배운 화가 클로비스 트루이유의 그림들은 현재 파리에서 1시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릴아당의 루이 상렉 예술역사박물관에 걸려 있다. 전시회는 2010년 3월 7일까지 열린다.
‘건달들, 점쟁이들, 관음증 환자들’란 이 전시회는 클로비스 트루이유의 가장 아름다운 그림들뿐 아니라 그의 친구화가들의 그림, 피에르 몰리니에(Pierre Molinier), 안 반 데어 린덴(Anne van der Linden) 등의 저주받은 화가들이 제작한 그림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그들은 클로비스 트루이유의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
축제를 벌이고 있는 성, 온갖 도발적인 성행위 묘사를 즐겨 구사하면서 편의주의에 반대하는 트루이유의 생각에 기꺼이 동조한다. 하지만 주의할 것! 그들의 그려내는 것은 단순한 성이 아니다. 그 어떤 구속도 허용하지 않는 욕망의 표현들이다.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는 전시회 도록에 클로비스 트루이유가 벌이는 투쟁이 여느 때보다 더욱 현재성을 갖는다고 힘차게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2000년 전부터 그 속에 안주하고 있는 부르주아 도덕”에 크로비스 트루이유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면서, 세 번째 천 년에 들어선 현재조차 유대교-이슬람교-기독교라는 일신교 사상의 본질이기도 한 “육체, 삶, 욕망과 쾌락에 대한 증오”를 완전히 깨부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철학자는 진단한다.
세상에서 가장 생기 충만한 쾌락의 원천인 우리의 육체를 부자나 빈자를 따질 것 없이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살아있는 기쁨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이랴. 무상에다가 일상적이며, 지칠 줄 모르고 무한정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단말마의 고통을 겪으며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우리 눈앞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갈 주요한 기억들은 쾌락, 포옹과 관련된 숨 막혔던 순간들일 것이다. 클로비스 트루이유는 바로 이 순간들을 경축한다. 우리 존재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순간들인 탓이다.
게다가 가장 보편적인 순간들이기도 하다. 이런 절대적인 평등의 형태 속에서는 전복이 이루어진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인간 사회들은 섹슈얼리티를 규정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클로비스 트루이유는 자기 그림과 떨어지는 걸 몹시 싫어한다. 일종의 완벽주의적인 강박증도 갖고 있다. 그의 그림을 가장 많이 수집하고 있는 컬렉터는 다니엘 필리파치(Daniel Filipacchi)이다.
출판인이자 ‘뤼(Lui)’라는 잡지를 창간한 언론사 사장인 다니엘 필리파치는 ‘보자르 마가진’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 대가의 그림을 몇 장 구입하기 위해 화가의 집을 규칙적으로 방문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클로비스 트루이유는 단 한 점도 팔기를 원치 않았지요. 나는 그에게 책을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그 후 우리는 친구가 되었고, 그는 서로 포옹하고 있는 여자 종교인들이 그려진 그림을 나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나에게 전화를 해 그림을 갖다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그림을 회수하려고 그러는구나 생각하고 내심 불안해했죠. 화가는 단지 며칠이면 된다며 안심시켜주었습니다. 그림을 되돌려받고 보니 풍경 하나를 추가했더군요. 포옹하는 두 여자의 모습을 몰래 바라보며 흥분하고 있는 구멍 속의 여인을 말입니다. 1년이 지나자 그림을 가지고 다시 집을 방문해달라는 겁니다.
이번에도 그는 며칠간만 그림을 보관했습니다. 예배용 서적 두 권이 바닥에 떨어진 장면을 덧붙였더군요. 세 번째 연락이 왔습니다. 자신의 ‘미완성작’에 사소한 것을 추가하고 싶다는 생각을 알리면서요. 이번에는 꽤 오랫동안 그림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그림을 되돌려받았을 때, 나는 어떤 ‘사소한 부분’이 추가되었는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알고 보니 인물의 벗은 엉덩이에 아주 미미한 아름다움을 추가했더군요.”
‘건달들, 점쟁이들, 관음증 환자들(Voyous, voyants, voyeurs)’ 전시회는 2010년 3월 7일까지 파리에서 1시간 떨어진 릴아당 루이 상렉 예술역사박물관(Musee d`Art et d`Histoire Louis-Senlecq de l`Isle-Adam)에서 열린다.
그 후에는 장소를 옮겨 2010년 3월 15일부터 9월 21일까지 샤를르빌-메지에르에 소재한 아르튀를 랭보 박물관에서, 2010년 10월 16일부터 2011년 1월 16일까지 라발에 소재한 비외 샤토 박물관에서 전시된다.
(이미지는 클로비스 트루이유의 그림)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