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뒤섞임을 일컫는 용어는 다양하다. 동물학에서 빌려온 혼종이나 금속공학의 용광로 등에 빗댄 표현은 비교적 중립적이다. 하지만 섞임은 때로 반발을 동반한다. 이를테면 우리말 ‘튀기’는 섞임을 얕잡는 대표적 ‘으르렁말’이다.
오늘날 교류를 가로막는 물리적 제약은 사라지고 갈수록 스밈과 짜임은 활발해지고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피터 버크는 단언한다. “이 세상에선 어떤 문화도 섬이 될 수 없다.”
버크의 ‘문화 혼종성’(강상우 옮김/이음)은 문화가 어떻게 만나고 충돌하며 뒤섞여 왔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사실 역사 속 문화 접촉이 늘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중세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의 공존은 개종 강요와 집단학살로 치닫기도 했다. 또한 문화교류는 때로는 희생을 바탕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간과해선 안된다. 그렇다고 저항이 늘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순수한 언어에 대한 독일인의 갈망은 20세기 초 절정에 달했다. 문제는 이제 전지구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란 사실이다. 저자는 전지구화로 인해 흔히 ‘맥도날드화’처럼 모든 문화가 개성없이 균질화할 것이란 주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해서 저자는 새로운 혼합체의 등장에 대해 유연하고 탄력적이기를 요구한다. 이질적 문화의 흡수와 재배치를 통한 변증법적인 새로운 문화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
김기훈 기자/kihun@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