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원호연 기자]한 집 건너 한 집 봉제공장이 늘어선 서울 성북구 장위동 주택가 골목. 2000년대 초 동대문 패션타운이 ‘아침에 맡긴 옷이 저녁에 나온다’는 패스트 패션으로 소문이 나자 덩달아 떼돈을 벌었던 곳이다.

그러나 이곳의 영화도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 바쁘게 일해도 하루 먹고 살기 어려운 게 요즘 봉제공장들 사정이다. J 봉제공장 김규칠(52ㆍ가명)씨는 “한창 동대문 패션이 잘 나가던 2000년대 초반에 한달에 1억 가까이 벌던 것에 비하면 절반 이상 줄었다”고 하소연이다. 불경기와 단순노동을 기피하는 사회분위기 탓이라고 한다.

면티를 주로 꿰매는 J 봉제공장은 간판도 없이 주택가 골목에 있다. 성북구부터 멀리는 경기도 구리까지 퍼져있는 봉제공장들은 영세하기도 하지만, 서로 알음알음으로 일감을 받기에 간판이 필요하지 않다.

2000년대 중반부터 경기가 안좋아지면서 주문도 줄었을 뿐 아니라 공임비가 낮은 중국과 동남아로 물량을 돌리는 거래처가 늘었다. 적은 물량을 두고 여러 공장들이 경쟁을 한다. 미싱사들 월급이라도 주려면 거의 마진 없는 가격에도 물량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일이 있다고 연락이 오면 주말도, 공휴일도 쉴 수가 없다. “비수기인 12월부터 2월까지는 거의 일감이 없기 때문에 지금 현금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폐업할 수 밖에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물량을 받는다”고 김 씨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곳 장위동 쪽 봉제공장들은 주로 만드는 옷의 종류와 단가에 따라 평균 5~8명이 일을 한다. 사장 김씨가 재단사를 겸하고 부인 한희숙(45ㆍ여ㆍ가명)씨가 5명의 다른 미싱사들을 이끌고 있다.

이곳의 일과는 아침 8시부터 시작된다. 동대문의 디자이너들이나 도매상들이 디자인 패턴지와 함께 원단을 이곳으로 가져오면 김 씨가 디자인을 살펴 원단을 바로 재단할 것인지 우선 나염ㆍ자수공장으로 보낼 것인지 결정한다. 로고나 무늬가 적은 기본 옷은 바로 재단 과정을 거쳐 6대의 미싱을 차례로 거치면서 하나의 옷으로 만들어진다.

부인 한씨와 최고참 장모(51ㆍ여)씨가 다른 미싱사들에게 수시로 바느질이 잘 된 점,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준다. 하루에 400~500장 이상의 티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다림질과 실밥제거, 포장을 마치고 퀵서비스로 동대문으로 보내고 나면 새벽 2시가 다 된다. 밥은 주변 식당에서 시켜서 돌아가며 혼자 먹어야 한다. 모두 손을 놓고 밥을 먹으면 동대문 패스트 패션의 무기인 ‘오늘 주문, 다음날까진 출고’의 원스톱 시스템이 불가능하다.

이렇듯 봉제공장들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도 위기에 빠진 가장 큰 원인은 인력부족이다. 이곳 미싱사들은 모두 40대 이상의 중년 여성이다. 한국의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서울에 있는 봉제공장 종사자의 85%가 40~50대다. 30대는 8%이고 20대는 겨우 2%뿐이다. 미싱이 고되고 박봉인 직업으로 알려지면서 더이상 새로 일을 배우러 오는 젊은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봉제 일을 25년 넘게 한 장 씨도 겨우 200만원 남짓을 가져간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간중간 미싱에 실을 걸어줄 ‘보조’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다. 적은 인원으로 소화할 수 있는 물량에 한계가 있다 보니 매출이 점점 줄어든다.

“좀더 싸게 주고 외국인 노동자를 쓸까 생각도 해봤지만 말도 잘 안 통해서 일도 가르치기 어려운데다 자칫 불법체류자 고용했다 벌금 받으면 바로 폐업으로 몰리기 때문에 포기했다”는 김 씨의 설명이다.

낮은 단가와 치솟은 물가도 부담이다. 부인 한씨는 “도매상들은 매년 같은 값에 옷을 맡기는데 기름값 오르고 작년 면화 흉작으로 실값이 껑충 뛰어서 점점 더 살기가 어렵다”며 “언젠간 이 일도 그만둬야 하지 않겠냐”고 울먹였다.

MK패션산업발전협회에 따르면 이곳 장위동을 포함한 성북구, 강북구, 중랑구 일부에 퍼져있는 봉제공장 종사자들을 모두 합치면 25~27만명으로 추산된다. 그 만큼 의류산업이 사양산업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다. 동대문 패션의 몰락을 그저 바라만 볼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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