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문명의 상징, 게임회사 근무하는 김용훈 씨…보통사람 99인의 손 만나며 그들의 인생과 악수를 나누다

“손은 세상과 소통하는 아날로그적 열쇠다.”

감성적이다. 과연 이 문장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놀랍게도 그는 국내 한 게임사의 홍보실장이다. 김용훈(41) 씨. 김 씨는 지난 10년간 정보기술(IT)이라는 문명의 최첨단에 몸담아 왔다. 그가 지난 몇 년간 색다른 ‘탐구생활’을 즐겼다. 대상은 바로 사람의 손이다. 그는 그 호기심을 묶은 ‘100인의 손에 담겨진 인생무늬-당신의 손은 무엇을 꿈꾸는가’라는 인터뷰 모음집을 막 탈고했다.

논리와 이성으로 점철된 IT맨. 김 씨가 ‘손’을 소재로 한 책을 썼다는 게 낯설다. ‘손금을 본다’ ‘손을 잡는다’는 말처럼 손은 이성보다는 감성을 드러내는 신체 중 하나다. 여기에 김 씨는 “손은 인생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신체부위”라며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굳은살과 상처, 손가락의 생김새가 모두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

이처럼 그가 손에 집착한 것은 지난 10년간 ‘아날로그적 감성’에 목말랐기 때문. 이 갈증을 풀 ‘오아시스’가 되어 준 이들은 바로 묵묵히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보통사람’이었다. 김 씨는 “세상에 고매한 사람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한 가지 일에 몰두하면서 성실이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범인(凡人)이야말로 진짜 영웅”이라고 말했다.

김 씨가 우리 주변의 숨겨진 영웅을 찾는 이유는 그의 소박한 포부에 담겨 있다. 스마트폰 게임 열풍으로 몸담고 있는 게임사가 미국, 일본 등에도 진출해 바쁜 일정을 보내면서도 그는 항상 ‘사람’에 대한 향수를 품어 왔다. 스마트 시대에 가장 걸맞은 직업을 갖고 있지만, 현대인들이 놓치고 있는 가치들을 전해주고 싶은 것이 그의 작은 소망이다.

이를 표현하는 창구가 바로 책을 쓰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2002년 시사풍자 소설 ‘할아버지 쉿’, 2005년 ‘늙은 왕자’ 등 두 권의 책을 냈다. 할아버지 쉿은 애국가 1~4절 가사를 이용해 정치인들의 가식적인 나라사랑을 꼬집었다. 늙은 왕자는 입시, 취직, 결혼 등 현대인들의 판에 박힌 삶을 위로하는 판타지 수필이다.

김 씨는 3년마다 책을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2008년 결혼하면서 잠시 보류됐다. 그러다 사람의 손을 아이템으로 잡으면서 이번에 7년 만에 다시 책을 출간했다. 앞서 냈던 책들은 김 씨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동원했지만 이번 경우는 모두 인터뷰로 진행돼 철저히 사람을 만나야 했다.

인터뷰하는 데만 2년이 걸렸다. 회사에 다니다 보니 평일에는 퇴근 후 경기도 등 서울 근교를 돌았고, 주말에는 지방 곳곳을 누볐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두 시간밖에 못 자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처럼 많은 것을 희생하는 만큼 제대로 손 인터뷰 책을 쓰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영웅의 손을 찾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우선 누구를 인터뷰할 것인가, 그 사람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 막막했다. 그래도 집배원을 만나기 위해 우정사업본부에 연락했고, 철도 역장의 손을 보기 위해 코레일의 협조를 받아가며 섭외를 시도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을 만나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지금은 은퇴한 이종범 선수를 만나려고 기아타이거즈 팬사이트와 전화번호를 뒤졌다. 간신히 기아타이거즈 홍보팀장을 통해 이종범 선수를 만날 수 있었다. 특히 이종범 선수에 대해 김 씨는 “이종범 선수는 까맣진 않아도 굵은 ‘남자의 손’을 갖고 있었다 ”고 말했다.

씨름 스타 이만기 감독과의 만남을 위해서 한증막까지 쫓아갔다. 그리고 결국 인터뷰했다.

극장 간판을 그리는 이태동 선생을 만나는 과정은 더 힘겨웠다. 극장 간판이 거의 없어진 터라, 이 선생의 활동 경로를 알 수 없었다. 김 씨는 수년 전 대학저널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추적해 4개월 만에 해당 기자와 연락이 닿아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게 인터뷰를 하며 책을 낸 김 씨는 “사람을 만나기까지는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분들을 인터뷰할 때마다 인생 하나하나를 배웠다”며 잔잔한 감동을 전했다. 그는 또 “입에서 나온 말은 포장되거나 거짓이 섞여 있지만 손은 진실만을 말해준다”며 “그분들의 손을 마주한 것만으로도 진실된 삶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인터뷰한 사람은 99명. 99번째 손은 갓 태어난 아기의 손이다. 인터뷰는 불가능했지만 이 아이의 손에 어떤 미래가 쥐어질지 궁금했다고 한다. 99번째 손을 장식한 그 아이는 어떤 세상에 살게 될까. 그 해답은 100번째 손에 달렸다. 그가 찾은 100번째 손은 ‘당신(독자)의 손’이다.

‘사람의 따뜻함을 보여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현재 네 번 째 작품으로 ‘늙은 왕자2’를 기획하고 있다. 이번처럼 인터뷰 형식의 책이 아닌 사랑과 우정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창작물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IT업계에서 갈고 닦은 창의력과 그의 인문학적 감수성이 더해져 어떤 작품이 탄생할지 기대된다.

서지혜 기자/gyelove@heraldm.com

사진=안훈 기자/rosedale@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