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4년 만에 KBS가 내놓은 ‘선녀가 필요해’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더욱이 동시간대 MBC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과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그 관심은 고조됐다. 시트콤 간의 맞대결이다.
앞서 지난 2009년 9월 방영을 시작해 총 167부작 ‘하이킥’ 시리즈의 시초인 ‘거침없이 하이킥’은 국민배우 이순재와 나문희를 필두로 정준하 박해미 이민용 서민정 등이 출연했다. 특히 정일우, 박민영 등 신예 배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놓기도 했다.
이어 시즌2인 ‘지붕뚫고 하이킥’ 역시 윤시윤 신세경 최다니엘 등의 배우를 발견했고, 황정음은 연기자로서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두 작품 모두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마지막 회에 대한 궁금증과 아쉬움으로 한동안 여운은 계속됐다.
또 KBS는 MBC와의 시트콤 맞대결을 불사하며 ‘선녀가 필요해’를 내놨고, 차인표의 첫 코믹연기 도전과 종영된 시트콤 ‘프란체스카’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심혜진의 출연만으로도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충분했다.
평일 오후 골든타임에 방영되는 미니시리즈의 경쟁도 아니고, 주말연속극의 박빙 승부도 아닌 ‘시트콤 맞대결’이 대중들의 이목을 끈 이유는 무엇일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대한민국의 시트콤 역사는 꽤나 길다. 대표적인 예로 1995년 방송된 SBS ‘LA아리랑’을 시작으로 1998년 방영된 SBS ‘순풍산부인과’는 지금까지도 등장인물 오지명과 박영규, 선우용녀의 성대모사가 회자될 정도다.
아울러 2000년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그리고 2004년 KBS2 ‘올드미스 다이어리’는 결혼 적령기를 넘긴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내 여성 시청자들의 지지를 얻었으며 인기에 힘입어 2007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처럼 대중들의 시트콤에 대한 사랑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부터 꾸준히 이어져 왔다. 다만 예전과는 달리 시트콤 내용이 더 폭넓어지고, 의미하는 바가 깊어진 진 것이 사실이다. 이를 받아들이는 시청자들 역시 ‘단순한 웃음’을 넘어서 ‘마음을 울리는’ 감동을 전달받는다.
최근 유수열 PD를 만나 대한민국에 불고 있는 ‘시트콤 열풍’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유수열 PD는?
1939년 4월, 충청남도 공주 출신으로 현재 MBN 시트콤 ‘갈수록 기세등등’의 연출을 맡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최고령 감독. MBC 개국과 동시에 공채 1기 PD로 출발, MBC 제작본부장, LA지사장을 역임했고 코미디쇼 ‘웃으면 복이와요’를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유 PD는 이날 대담에서 시트콤이 지닌 특색과 개그맨의 잠재능력, 강호동과 유재석이 예능 1인자인 이유 등 크게 세 가지 주제를 분석했다.
1. 시트콤 열풍, 이유는 무엇일까
바야흐로 시트콤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중들은 미니시리즈, 연속극이 아닌 시트콤의 마지막 회에 관심을 기울인다. 심지어는 공식 게시판을 통해 결말을 수정해달라는 아쉬움의 목소리를 높이기도 한다.
‘갈수록 기세등등’을 촬영 중인 유수열 PD는 “시트콤에는 계급이 등장하고 이에 따른 갈등, 그리고 현실에 대한 풍자가 녹아있다”고 운을 뗐다.
시추에이션 코미디(situation comedy)의 약자인 시트콤(SITCOM)은 상황적인 희극, 코미디 드라마라는 사전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무대와 등장인물은 같지만 매회 이야기가 다른 방식으로 연결되는 코미디다. 드라마보다는 가볍고, 코미디보다는 진지하다. 하지만 시트콤에는 웃음, 재미, 감동, 눈물, 우리 인생의 모든 감정들을 담고 있다. 때문에 대중들은 드라마보다 더 친근하게,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더 시트콤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 시트콤에는 계급이 있다 “시트콤에는 반드시 계급이 등장해야 합니다. ‘갈수록 기세등등’ 역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죠. 군대를 주 무대로 삼고 있는 만큼 주인공 이재용과 박해미 부부는 각각 중령과 대령(연대장)으로 등장하는데, 두 사람의 계급 차이가 극에 재미를 더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편보다 계급장이 높은 부인 같은 예상 밖의 차이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전달하고 여기서 다양한 이야기 거리가 만들어지는 거죠”
유 PD의 말대로 살펴보면 이는 종영된 ‘하이킥2-거침없이 하이킥’에서도 나타났다. 극중 윤시윤은 가정부인 신세경을 짝사랑했고, 취업준비생 황정음은 의사인 최다니엘과 연인사이였다. 또 앞서 ‘하이킥1-지붕뚫고 하이킥’에서도 부인 박해미는 잘나가는 한의사였지만, 남편 정준하는 놀고먹기만 하는 백수. ‘하이킥3-짧은 다리의 역습’ 역시 마찬가지로 윤계상은 의사, 그를 좋아하는 백진희는 ‘88만원 세대’의 표본이다.
단순한 캐릭터 설정이라고 넘기기엔 극명한 인물간의 계급 구도가 자리하고 있는 것.
유수열 PD는 이를 두고 “계급관계는 갈등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곧 ‘개그소재’가 되는 거예요. 계급과 갈등관계가 명확하게 그려지면 웃음과 재미는 배가됩니다”고 설명했다.
# 시트콤은 빠르다 “시트콤은 미니시리즈, 연속극과 비교해 전개가 빠른 편입니다. 매회 다른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가고 다양한 에피소드가 등장해야 하기 때문이죠. 속도 역시 빠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드라마도 예전 보다 대사와 스토리 전개가 빠르게 변모하는 추세지만 시트콤은 이 보다 더욱 빨라야 합니다”
약 30분 동안 에피소드 하나, 내지는 둘을 마무리해야 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대사는 미니시리즈보다 두, 세배 가량 많더라도 속도는 같거나, 빨라야 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니 등장인물들이 ‘다다다’ 쏘아 붙이는 것도 모두 장르의 특성이다.
# 시트콤에는 세태 풍자가 녹아있다
“시트콤은 드라마와 코미디의 조합입니다. 때문에 코미디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세태 풍자가 녹아있죠. 세태와 현실을 꼬집으며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다른 어떤 것에 빗댐으로써 재미가 더해집니다”
풍자는 빗대어 조소하는 공격방식으로, 비판과는 달리 웃음이 동반한다. 더군다나 이는 우회적인 방식으로 풀어내기에 한층 의미를 더한다. 시청자들은 내포된 ‘무엇’을 찾고, 또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희미하게 던지는 현실풍자에 통쾌함까지 느낀다.
유 PD는 시트콤 속 풍자를 설명하며 “코미디에 있어서 풍자는 생명이자 교훈”이라며 “극이 세태를 반영하고 부정적인 현실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트콤 안에는 작품을 더욱 특별하게 이끄는 장르의 특색이 있다. 이 모든 것이 더욱 진보하고 발전하는 대한민국 시트콤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김하진 이슈팀기자 / haji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