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7회> 바람 부는 길 15

세상 오래 살다보면 구경거리도 많은 법이다. 뱀이 개구리 잡아먹는 모습이야 하시라도 볼 수 있지만, 오래 살다보면 개구리가 뱀을 잡아먹는 꼴도 보게 되더라는 말이다. 지금 게릴라 랠리에 출전하기 위해서 1974년산 치타를 몰고 스키장으로 향하는 전진후의 각오야말로 곧 뱀을 통째로 삼킬 개구리와 다름없었다.

“엊그제 몬테카를로에서 우승한 놈…이름이 뭐야?”

갸르릉, 갸르릉! 늙은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치타를 몰던 전진후가 코-드라이버 김지선에게 물었다. 스키장으로 올라가는 산길에는 아직도 잔설이 분분한데 뒷바퀴가 눈길에 닿을 때마다 늙은이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것이 혹시 바퀴를 연결하는 축의 보올 베어링이 깨진 것이나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미코 히르보넨.”

“아니! 사람 말고…머신 이름이 뭐냐고!”

“뉴 피에스타 S2000, 포드!”

“허허! 미국 머신이로군. 미국 머신은 한결같단 말이야. 귓불을 잡으면 오로지 귀만 달아오른다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랠리 경기에서 누가 귓불을 잡아당겨요?”

“머신이 둔하다는 말이지. 팍팍 돌거나 솟구치는 맛이 없어. 당신처럼 귓불을 당기면 아랫배가 제풀에 움찔거려야 데리고 놀 맛이 나지. 안 그래?”

“누가 누굴 데리고 놀아요?”

“상관인 드라이버가 쫄짜인 코-드라이버를 마음껏 데리고 놀 줄 알아야 진정한 레이싱의 맛을 느낀다고. 코-드라이버를 통해서 자료만 취하려는 놈은 생전 가봐야 등수 안에 들지도 못해.”

“그럼 오늘 벌이는 게릴라 랠리에서는 나를 데리고 놀겠다는 거예요? 농락을 하겠다는 말인가요? 나를?”

“그게 아니고…감각이 예민한 당신이 코-드라이버를 보고, 나는 당신의 예민함을 미리미리 느끼다 보면 둔하고 반응이 느린 미국차를 모는 미코 히르보넨 정도야 쉽게 따라 먹을 수 있다는 뜻이었지. 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전진후가 그렇게 떠드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실전감각이라고나 할까? 바로 엊그제까지 몬테카를로의 산길을 달리면서 익혔던 감각을 그는 신봉하고 있었다. 그는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재규어 XKR를 몰던 유호성의 모습을 떠올리는 중이었다. 그날 권도일이 무섭게 추격해오자 유호성은 몽펠부 산의 정상으로 향하는 펠부고원으로 불쑥 들어서지 않았던가. 모든 출전 차량은 아랫길로 돌아내려갔지만 유호성은 해발 4000미터에 육박하는 길로 당당히 들어섰던 것이다.

“그날…우리는 해발 4000미터를 향해 차고 올라갔지. 아무도 뒤쫓아오지 못할 거라 여겼어. 하지만 뒤에서 추격하던 1974년산 치타는 예민하기 이루 말할 수 없었어. 펠부고원을 펄펄 나는 거야. 어찌나 무섭던지. 그러나 눈밭을 펄펄 날던 그 예민한 차를 지금은 내가 몰고 있단 말씀! 게다가 그날의 코-드라이버까지 옆에 태우고 있으니 오늘 우승은 떼어놓은 당상이라고.”

이렇게 떠드는 동안 벌써 스키장 뒤편의 정상에 도달한 모양이었다. 눈앞으로는 탁 트인 하늘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멀리에 많은 차량이 도열해 서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이 곧 열리게 될 게릴라 레이싱의 출발점인 모양이었다.

“우승팀 상금이 얼마였지? 3000만달러?”

“그래요, 추가로 드라이버에겐 10년간 연금 지급!”

아무래도 거성 재벌이 미쳐가는 모양이라고…하지만 아무러면 어떠냐고…상금 3000만달러의 주인공이 되기만 하면 장땡이라고…그는 혼자 생각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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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