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8회> 바람 부는 길 6

얼음판 위를 뱅글뱅글 돌던 차는 가까스로 멈춰 섰지만 마사지를 해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두근거리던 그의 심장은 멈출 줄을 몰랐다.

“내 오금을 마사지해 주겠다고 했습니까? 좋아요. 해주세요. 아무리 여자라도 한번 내뱉은 말에 책임은 질 수 있겠지요?”

“그래요, 책임지죠 뭐. 그런데 오금이 어디지요?”

“어디긴 어딥니까? 무릎이 접어지는 뒤쪽이지요. 그러니까… 허벅지와 종아리 사이. 야들야들하지만 예민하기 짝이 없는 곳.”

“어머나, 정말이에요? 오금이 허벅지 아래예요? 그렇다면 취소! 나는 오금이 무르팍 뒤쪽인 줄 정말 몰랐어요.”

이런! 장난 놀다 애 밸라. 김지선은 그제야 정색을 하며 변명했다. 하지만 전진후는 눈을 똑바로 뜬 채 그녀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는 김지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언젠가는 둘만이 즐길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기회는 만들어 가는 것. 상대가 실수한 것을 구실 삼아 몰아붙이면 마사지는 받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그녀의 손목이라도 잡아볼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어머나! 진후 씨는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마사지를 해달라고 그러시나요? 더구나 만난 지 며칠밖에 되지 않은 처지에?”

그녀가 손사래를 쳤지만 전진후는 완강했다. 타이밍을 잡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세상 모든 일에 타이밍이 중요하겠지만 남녀상열지사에서는 유독 타이밍의 중요성이 더했다. 남자가 여자를 찍은 순간부터 침대에 쓰러뜨릴 때까지는 어찌 보면 절묘하리만치 치밀한 시간계산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아무 때나 조른다고요? 내가 바보인 줄 아십니까? 지금 지선 씨가 얼마나 허탈한 상태에 빠져 있는지… 내가 모르는 줄 아세요? 그리고 내가 아무에게나 조른다고요? 날 어떻게 여기고 하는 말입니까? 비록 생긴 건 산도둑 같아도 마음은 대나무처럼 곧은 사람입니다. 권도일인가 뭔가 하는 사람처럼 쉽게 배신하고 떠날 사람이 아니라고요.”

이런! 그 말을 듣는 순간 김지선의 가슴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얼굴에 지저분하게 돋아난 수염처럼 거칠고 산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만 여겼더니 웬걸, 남의 심금을 울리는 기술이 선수 급이었다. 하필이면 이 순간에 권도일, 그 남자의 이름을 들먹이다니!

“권도일, 그 남자가 배신하고 떠나다니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작작 하세요.”

김지선이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녀의 억장은 무너지고 있었다. 전진후의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산길을 달리던 중에, 그녀는 권도일에게 젖가슴을 내어주지 않았던가. 제1 스테이지에서 유호성이 몰던 재규어 XKR을 따라잡지 못하고 포기하던 그 순간, 그녀는 조용히 권도일의 얼굴을 감싸주지 않았던가. 그러자 권도일은 드라이빙 글러브를 황급히 벗어던지고는 맨손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더듬기 시작했었지. 잠시 부들부들 떨리는 듯하던 그의 언 손이 서서히 그녀의 드라이빙슈트를 헤치고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을 때 그녀의 젖가슴마저 서늘해지지 않았던가.

“그 작자는 벌써 일주일째 소식도 없습니다. 어디론가 떠난 거라고요. 그렇기 때문에 거성의 오너가 나를 스카우트한 것이기도 하고요.”

정말일까? 권도일… 그는 왜 아무런 말도 없이 떠난 것일까? 내가 사랑한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일까? 내 사랑이 거북해서? 내 사랑이 귀찮아서?

“괜히 떠났을 리가 없어요. 아무런 인사도 없이 떠날 사람이 아니라고요.”

“미치겠네. 몬테카를로 랠리에서 3등으로 입상하고 나서 마음이 바뀐 거라고요. 아마 외국의 어느 팀으로 팔려갔을 겁니다. 지선 씨도 그만 잊어버리세요. 그 작자.”

타이밍이 적절히 들어맞았기 때문일까? 일주일간 아무런 소식이 없던 권도일의 생각에 울컥 설움이 북받쳤기 때문일까? 문득 고개 돌려 전진후를 바라보니 갑자기 그가 믿음직한 드라이버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스파이더!’… 한번 타고 나면 미쳐버리고야 마는 그런 자동차를 운전하는 드라이버로 여겨지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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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