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7회> 끝까지, 죽을 때까지 52
유민 회장은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단 한 번의 만남으로 800억 원을 융자받을 수 있는 러시아 광산 채굴권의 소유자 양은혜를 낚았으니 혼자 생각에도 대견하기만 했다.
‘흐흐흐, 난 아직 늙지 않았어. 열댓 살이나 어린 여자를 대번에 꼬이다니.’
이렇게 혼자 기뻐하고 있던 중에 느닷없이 도종호 상무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다. 미처 어제 마신 술에서 깨어날 틈도 없었다. 눈을 감으면 어젯밤의 추억, 이를테면 방송사 상무와 그의 사촌여동생 양은혜, 이렇게 셋이 어깨동무를 해가며 술 마시던 모습이 떠올랐고… 눈을 뜨면 유리의 성 특급미녀 송유나가 따라주는 양주잔과 그 앞에서 고요히 취해가는 도종호 상무의 모습이 보일 뿐이었다.
“미치겠군, 어제가 오늘인지 오늘이 어제인지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가 없어.”
“구분해서 뭐해요. 그냥 열심히 약주나 드시면 되지요. 저는 신입사원 한송이예요.”
“그래? 네가 300억 원의 자금과 50대의 지원 차량을 끊은 놈이야?”
“어머나, 회장님! 어느 놈이 그렇게 막강한 돈줄을 끊었대요?”
“어푸푸, 내가 취했구나. 너는 어여쁜 처자로구나. 거성의 재벌 2세가 오늘 저 양반을 잘랐다는구먼. 돈줄도 끊고, 자동차도 끊고… 이제 보니 졸장부야 거성의 재벌 2세!”
유민 회장은 이미 인사불성이었다. 장차 5개국 횡단 랠리경기가 시작되면 거성에서 총 경비의 10%인 300억 원을 대겠다고 했던 약속이 무참히 깨진 충격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러시아 광산 채굴권을 담보로 맡기면 무려 800억 원을 차입할 수 있단 말이다. 졸장부 같은 놈, 까짓 300억 원에 배신을 때려?
도종호 역시 취해서 정신을 잃기는 매일반이었다. 자고로 남자들은 어수룩한 짐승이라 했던가? 도종호 상무는 거성의 재벌 2세에게 배신당함과 동시에 새로운 주군으로 유민 회장을 택한 셈이었다. 장기판으로 치자면 상대방의 장군에 물러달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맞받아 멍군을 부른 셈이었다. 힘센 재벌 2세가 장군을 불렀는데 쥐뿔도 없는 도종호가 멍군으로 응대했으니 가히 어수룩하다고 할 수밖에.
“이봐, 마담! 아니 신입사원! 지금 몇 시라고? 어서 이것 좀 켜봐요.”
언뜻 정신이 들었는지, 유민 회장은 스마트폰을 꺼내어 유리의 성 신입사원 한송이에게 내밀었다.
“트위터! 트위터를 켜봐. 화면에 파랑새 한 마리가 떠있을 거요. 그걸 누르라고.”
유민 회장은 취중에서도 전진후가 단독으로 전하는 몬테카를로 랠리의 속보를 듣고자 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늘 새벽 2시쯤이 마침 결승 테이프를 끊는 시각이었다. 남들은 따르는 자, 따라오는 자… 이를테면 팔로우, 팔로어가 수천 명에서부터 수십만 명에 이르곤 했지만 유민 회장은 전진후 단 한 명만 팔로우하고 있을 뿐이었다. 왜냐고? 그야 물론 전진후가 보내는 타임라인을 편히 읽어보기 위함이었다.
“회장님이 트윗을 하시다니 멋져요! 그런데 왜 이러지요? 먹통이에요. 아무도 타임라인에 뜨질 않아요.”
한송이는 유민 회장의 스마트폰을 꺼버리고 옆에 취해서 쓰러져 있는 도종호 상무의 스마트폰에서 트위터를 작동하기 시작했다. 그 역시 한 사람만을 팔로우하고 있었을까? 누군지는 몰라도 한 사람의 아이디로 뜨는 타임라인이 병풍처럼 이어지는 중이었다.
“이 양반은 누군데 도배를 할까? 아예 혼자서 중계방송을 하네요.”
“그래, 바로 그거야. 뭐라고 중계방송을 하는지 읽어봐요. 동영상은 안 들어왔나? 나는 취해서 도무지 뵈질 않아.”
“도종호 선배님! 몰래 숨어서 소식 알립니다. 이제 간첩 혐의 벗어났음! 거성 그레이스 팀 당당히 3위로 골인! 축하! 유민 호크아이 팀 폼나는 꼴찌! 국제 망신!”
신입사원 한송이는 낭랑한 목소리로 그 스마트폰의 타임라인을 읽어 내려갔다. 도종호가 심어놓은 후배의 간첩질이었는데… 그 소식에 오금이 저려오는 사람은 유민 회장이었다.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