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 끝까지, 죽을 때까지 (49)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홀드, 스윙, 홀드, 스윙…’
춤은 단순했다. 두 팔로 그녀를 끌어안고 천자문 외는 학동처럼 몸을 좌우로 슬슬 흔들면 그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온 몸으로 열기가 확산되더라는 말이다. 실내 온도가 높기도 했지만 땀에 젖은 것처럼 가슴 앞자락이 흥건해지기도 했다.
“기분이 어때요?”
어떻긴, 미치겠지. 감질 나 죽겠지. 하필이면 이렇게 야한 춤을 추면서도 겉으로는 어찌 그리 엄청난 우아함을 뿜어낼 수 있을까. 백광돌은 진정으로 그녀의 마음을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고백성사를 하고 있는 기분이야.”
마침 그 순간, 지겟작대기에 불끈 힘이 들어갔으므로 그는 엉덩이를 뒤로 슬며시 빼며 가까스로 대답해야만 했다. 욕망의 힘은 어째서 이런 순간에만 분출되는 것일까. 그는 낯 뜨거울 뿐이었다.
“몸은 솔직한 거예요. 허리 아래로 고백을 하는 군요, 오빠는.”
하긴 그녀도 충분히 느낄 만큼 지겟작대기는 주책없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고백실의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는 순간처럼, 어쩌면 티끌 한 점 거짓이 없는 몸으로의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다.
“우리 서로 좋아하는 거 맞나?”
그녀가 이렇게 속삭였지만 백광돌은 그녀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 500여 명이 좁은 곳에 몰려 홀딩 댄스를 추고 있었으니 그 분위기가 얼마나 야릇할까. 그 야릇한 분위기에 파도처럼 휩쓸려 들어가 있었으니 어찌 속삭이는 소리를 알아챌 수 있을까. 이를테면 백광돌은 마음이 녹기 전에 이미 몸부터 흐물흐물 녹아가는 중이었다.
“그럼 날 마음껏 좋아해 봐요.”
자고로 철학은 이런 순간에 탄생하는 것. 강유리의 당찬 요구에 백광돌은 마음으로부터 깊이 사유하기 시작했다. 사유란 무엇일까? 경험하여 아는 사실을 바탕으로 아직 경험하지 않은 지경에 까지 이르는 정신 작용 아니겠는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정신작용이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그녀의 몸을 품고 난 이후에 생겨나는 현상일 것이고… 경험하여 아는 사실이란, 자칫하면 선배 강준호에게 늘씬하게 얻어터지게 됨을 일컬음일 것이다.
“유리가 선배의 딸만 아니라면 마음껏 좋아해 보겠어.”
“참 비겁해요, 오빠는.”
유치하고 손발이 오그라드는 대화였지만 솔직하기는 했다. 다시 말하지만 강유리가 어떤 여자란 말인가. 늘씬하기로는 모델 뺨 치고, 어여쁘기로는 영화배우인 여류 골퍼 아니겠는가. 이 세상의 어떤 남자라도 한 번 보고나면 꿈속을 헤맬 정도의 미인이란 말이다. 하지만 백광돌을 가장 믿어주는 선배의 딸이었다. 그런 상대와 춤을 추면서 지겟작대기를 불끈 세우고 상대의 아랫도리를 툭툭 건드리고 있었으니 불경죄로 친다면 그 죄질이 가히 능지처참을 할 정도였다.
그때… 내쉬는 숨결마저 뜨거워서 정신이 몽롱해질 그 무렵에 느닷없는 자동차 굉음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흐느적거리며 춤추던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
몬테카를로 랠리의 선두그룹이 드디어 모나코 몬테카를로에 입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 자동차들이 오죽이나 빠른가. 자동차 굉음에 이은 함성소리는 불과 1분을 넘지 않았다. 창밖을 보며 한껏 소리 지르고 난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의 짝에게 열렬히 키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이른바 랠리 키스!
아, 이걸 어째야 하나… 잠시 망설이던 백광돌은 분위기에 휩쓸려 그만 강유리의 입술을 덥석 물고 말았다. 촉촉하고 향기로운 그녀의 입술 역시 뜨겁게 반응하고 있었다.
<계속>
meelee@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