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키가미’...발기한 음경 장식(Kokigami: la decoration d’erection)

선물용 포장지로 페니스를 장식하는 예술을 의미하는 ‘코키가미’에 대해 들어보신 적이 있는지? 두 명의 뉴질랜드인들이 만든 이 애매모호한 발명품은 대성공을 거뒀다. 일본인들조차 그들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였을 정도니까.

1990년 뉴질랜드인 버튼 실버(Burton Silver)와 히더 부쉬(Heather Busch)는 ‘개인적인 종이장식 기술’이란 책을 출간했는데, 종이를 접거나 잘라 페니스를 장식하는 여러 방법에 관한 내용이 들어있다. 역사를 자랑하는 예술인 페니스 장식은 일본에서 코키가미란 이름으로 불린다고 한다.

그 말을 온전히 믿을 경우 코키가미는 천, 종이, 리본, 비단 등을 이용해 페니스에 조그만 장식물을 입히는 예술이다. 화려한 부케 모양을 만든 후, 발기한 페니스를 부케 한가운데 위치한 꽃처럼 보이게 하는 게 목적이다.

두 저자는 일본에서 비롯된 이런 전통이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강조한다.

“코키가미의 기원 문제는 늘 학술적 토론의 대상이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코키가미 전통이 종이를 접는 기술인 오리가미(origami)에서 직접 유래됐다고 주장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종이를 자르는 기술인 키리가미(kirigami)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코키가미는 접고 자르는 두 기술로부터 비롯됐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코키가미 전통이 포장술을 지칭하는 츠츠미(tsutsumi)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이상하게도 그런 주장을 뒷받침할 학술서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욱 이상한 것은 인터넷과 ‘브렌다 B. 러브’를 위시한 주요 섹슈얼리티 사전에 등장하는 코키가미 관련 정보가 두 사람이 기술한 내용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는 점이다. 정보들이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인데도 말이다.

“초창기 일본 문학 서적들을 뒤져보면 귀족들이 여성의 집을 방문하기 전에 자신의 성기를 꾸민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오노 야스마로(太安麻呂)가 712년 완성했던,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화와 전설을 기록한 역사서 ‘코지키(古事記)’에는 ‘비단과 리본으로 오랫동안 시간을 보내는’ 남자들 얘기가 나옵니다.”

확인해본 결과 ‘코지키’ 속에는 그런 풍경과 관련된 어떤 구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성기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남자들에 대한 얘기가 너무도 매력적이라 일본 사이트를 비롯한 수백개의 인터넷 사이트들이 코키가미와 관련된 거짓 정보를 여과 없이 싣고 있다.

코키가미가 오직 여성을 유혹하고 사랑하며 쾌락을 연장시키는 기술이라는 것을 말해야겠다.

버튼 실버와 히더 부쉬는 “사전 준비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포장하는 방법이 복잡합니다”면서 목에 힘을 준다. “섬세한 손으로 선택받은 여성이 선물을 열어봅니다. 약간 들뜬 채 선물을 가볍고도 부드럽게 포옹하면서 완전히 개봉할 때까지 쾌락이 연장됩니다. 아쉽게도 츠츠미 의식(儀式)은 오늘날 사라지고 없지만, 그 정신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기다림과 절제의 미학을 통해 쾌락을 극대화하는 방식이 그것입니다.

6세기께 일본에 전래된 불교는 신도(神道)가 고수하던 남근숭배 전통을 종식시키는 대신 그것을 흡수했습니다. 그에 따라 불교의 영향을 받은 신도와 승려들이 7세기부터 코키가미 기술들을 발전시켰지요. 승려들은 존재의 물리적 중심을 이루는 페니스의 역할을 탐구하는 동시에 그것을 초월할 방식을 찾아 애썼습니다. 마치 배우들이 자기에 걸맞은 역할을 찾아 애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내밀한 자아와 접촉하려고 애썼습니다.”

정보가 담고 있는 내용은 가당치 않다. 하지만 그걸 믿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극도로 거만하게 버튼 실버와 히더 부쉬는 코키가미와 일본 연극 ‘노(能)’ 사이에 유사점이 발견된다고 주장하기조차 했다. “‘코키’란 단어는 배우들이 허리 근처에 다는 조그마한 의복 조각을 지칭합니다.

노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는 남자들입니다. 신속히 다른 인물들로 옮겨가기 위해 배우들은 코키를 이용하지요. 코키는 모자, 가면, 심지어 무기로도 사용됩니다. 코키는 연극 속 변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액세서리입니다.”

확인해본 결과, 노 연극 속에서 이런 천 조각이 등장하는 법은 절대 없다. 호사스럽고도 밀착된 기모노를 걸친 배우들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옷을 빨리 갈아입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그들 주장의 허구성을 알 수 있다. 코키가 ‘꼬리’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 ‘cock’과 아주 유사할지라도, 인터넷에서는 그 누구도 말장난을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심지어 일본인들조차 이 사람들의 주장을 답습할 정도다.

실제로 코키가미가 존재했던 것일까에 대해 의구심을 품는 곳은 일본의 몇몇 사이트들뿐이다. 만약 코키가미 전통이 존재했더라면 왜 일본 판화를 어설프게 흉내낸 오직 두 개의 이미지만이 코키가미를 그려내고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해 아무도 놀라지 않는 것은 뉴질랜드인들의 재능 덕이기도 하다. 그들이 섹슈얼리티에 관련된 이야기를 지어냈고, 거기에 역사적인 과거까지 부여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온 세상을 속인 후 자신감에 차 코키가미를 새로운 치유방식으로 내세우며 행각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일부 정신심리요법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성기를 장식해 보라고 권유한 후 흥미로운 결과를 얻고 있다고 버튼 실버와 히더 부쉬는 책 속에서 강조한다. 어쨌거나 두고 볼 일이다.

글=아녜스 지아르(佛칼럼니스트), 번역=이상빈(문학박사ㆍ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