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의 원래 주인은 픽트족이었다. 5세기께 북아일랜드에 살던 켈트족의 일파인 스코트족이 바다를 건너 스코틀랜드 서부 아가일 지역에 상륙했고, 843년 토착 지배자인 픽트족을 밀어내고 왕국을 건설했다. 이후 이들의 이름을 따서 스코틀랜드로 불리게 됐다.

12세기 스코틀랜드는 봉건제가 정착돼 왕국의 모습을 갖춰 갔지만, 이후 900여년간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지 않으려는 항쟁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13세기 스코틀랜드인은 잉글랜드왕 에드워드 1세의 폭정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이에 13세기 후반 에드워드 1세에 대항해 ‘스코틀랜드 독립항쟁의 영웅’ 윌리엄 월레스가 등장했다.

월레스는 1297년 의병을 조직해 여러 차례 대규모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잉글랜드를 끊임없이 위협했다. 하지만 1305년 한 귀족의 배신으로 월레스는 잉글랜드군에 체포돼 처형당한다.

1314년 스코틀랜드 왕 로버트 1세가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2세의 침공을 막아낸 ‘배넉번 전투’가 일어나고, 14년 뒤인 1328년 스코틀랜드는 독립을 쟁취하게 된다.

그러나 1603년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1세가 세상을 떠난 뒤 후손이 없자 인척인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 왕(제임스 1세)에 오르면서 스코틀랜드는 다시 잉글랜드와 연합국가가 된다.

이어 1702년 제임스 2세의 차녀가 여왕으로 즉위하고, 스코틀랜드 의회가 경제 운영에 실패한 뒤 1707년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이라는 이름으로 잉글랜드에 정치ㆍ경제적으로 완전히 통합된다.

스코틀랜드는 1707년 이후 자치권을 보장받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1692년 잉글랜드군이 스코틀랜드인을 잔혹하게 학살한 ‘글렌코의 대학살’ 등으로 잉글랜드에 대한 민족적 반감은 여전히 강하다.

이에 1979년 노동당은 스코틀랜드 분권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했지만, 투표율이 32.9%로 전체 유권자 중 40% 이상이 투표해야 한다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부결됐다.

1997년 영국 노동당 정부는 분리독립운동을 무력화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지방의회에 행정 자치권과 조세 재정권을 이양했고, 스코틀랜드 의회가 폐회된 지 292년만인 1999년 다시 설치됐다.

2007년에는 스코틀랜드 국민당(SNP)이 제1당에 오르면서 외교와 국방을 제외한 자치권을 갖는 준독립정부를 설립했다. 지난해 5월 총선에서 SNP는 과반 다수당이 됐으며, 2014년 가을 영국으로부터 독립 여부를 결정할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민상식 인턴기자/mss@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