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출마 선언은 외국에서도 정치 쇄신 움직임과 맞물려 하나의 ‘정치의식(儀式)’으로 자리 잡았다.
불출마 ‘번복’ 역시 간간이 눈에 띈다. 권력의 유혹에 의지가 흔들리는, ‘정치인’이라는 인간형의 특성은 한국이나 외국이나 공통적인 코드가 있나 보다.
지난 1995년 영국 하원 더들리 피시번 의원은 전격 총선 불출마를 선언해 신선한 충격파를 던졌다. 그는 “현대사회는 적은 수의 정치인을 필요로 하는데 의원이 너무 많고 할 일도 없다”고 의회를 힐난한 뒤 이별을 고했다.
일본에서도 ‘인적 쇄신’ 차원의 불출마 선언이 꽤 있었다. 지난 96년 일본 총선을 앞두고 65세 이상 26명 전원이 불출마 선언했고, ‘참의원의 대부’로 꼽히던 아오키 미키오 자민당의 참의원 의원회장도 후진 양성을 이유로 정치생명 연장을 포기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94년 12월 자크 들로르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좌우동거 체제 속에서 소신을 펴기 어렵고, 당선이 된다 해도 사회주의 정책을 펴지 못한다”면서 대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2007년 3월에는 당시 75세이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통합과 혁신을 당부하고 ‘퇴임 후 봉사’를 다짐하며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최근 비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안타까운 말년을 보내고 있다.
콜린 파월 전 미국 국무부 장관은 96년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했는데, 32년간 남편을 내조했던 부인의 만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남편이 암살당할 수도 있다는 ‘기우’에서였다.
외국에도 ‘꼼수’는 있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91년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이미 총리직 유지가 어렵게 된 이후 벌인 생색내기였다. 그녀는 그 전 해 당내 의원 45%가 등을 돌리는 바람에 총리에 오를 수 있는 요건을 채우지 못했고, 야당인 노동당의 불신임안 제출 공세에 시달리던 터였다.
헬무트 콜 서독 총리의 불출마 번복은 세계적인 식언으로 기록돼 있다. 96년 초 불출마 입장을 유지하다가 시간이 좀 지나자 ‘노 코멘트’라고 하더니 그 해 5월 ‘조건부 출마’ 의향을 비친 다음, 한 달 뒤 “많은 사람이 내가 계속 이 자리에 남아주기를 원한다”며 출마를 선언했다.
가장 최근에는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군인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가 각종 성추문과 루머에 시달린 끝에 지난해 10월 5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경쟁자들이 하나 둘 이런저런 추문으로 인기가 떨어지자, 지난달 19일 한 토크쇼에 출연해 “평범한 사람이 뛰어들기에 너무 늦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느냐”면서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