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열망을 품은 도전 (38)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는데 아직도 칼을 뽑지 못하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만일 연극무대에서 여주인공을 앞에 세워놓고 단독대사를 날려야 하는 판에 대사가 생각나지 않는다면? 상황은 달라도 답은 하나. 멀티시스템을 가동하여 어떤 식으로든 극적인 상황을 연출해야만 할 것이다.

“신 여사, 회전초밥 먹어봤어요?”

이건 무슨 뜬금없는 소리일까? 하지만 신희영의 블라우스를 벗겨내고 제 자신도 반나체가 된 상태에서 퀴즈놀이나 하자는 뜻은 아니었을 테니 문득 저의가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요. 초밥 담은 접시가 빙글빙글 도는 모습이 낭만적이긴 했지만.”

“바로 그거예요. 낭만! 자, 오늘은 한 번 낭만적으로 놀아봅시다.”

언 발에 오줌 누기란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절치절명, 시간을 끌어야만 할 지금 이 순간에 극적인 상황을 연출할 다른 방법이 없었으니… 그는 커튼 끝자락을 신희영의 겨드랑이에 끼우고 무조건 서있는 채로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커튼이 레일을 따라 젖혀지면서 멍석 말리듯 돌돌 감기더니… 신희영의 몸은 순식간에 돌돌 말린 레일 속에 숨겨지고 말았다. 다 감겨졌다 싶으면 이번엔 반대 방향으로 그녀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말렸던 커튼이 풀리더니 잠시 그녀의 나체가 드러나는 게 아닌가. 강준호는 무작정 그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돌돌돌돌…’

“어머나 멋져요. 온 세상이 어둠 속으로 잠겨가는 것 같아.”

‘돌돌돌돌…’

“아! 이번엔 눈앞이 점차로 밝아져요… 현기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이게 바로 네오리얼리즘예요.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자극을 누리는 것.”

“그래, 맞아요. 형이상학적인 즐거움! 그야말로 즐거움의 극지지요.”

형이상학적이면 어떻고, 허리하학적이면 어떠랴. 그는 잠시나마 쾌지나칭칭을 콧소리 내어 부르고 있었다. 지루박에서 파트너의 손을 머리채 위로 잡아 돌리듯이, 탱고에서 파트너의 가느다란 허리를 팔뚝으로 감았다가 풀어내듯이 그는 두꺼운 벨벳커튼 끝자락을 잡고 이리 감았다가 저리 풀어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오! 강 프로님. 이런 기분 처음이야. 쪽배를 타고 강물 위를 흘러가는 것 같아요. 눈앞에 별이 오락가락 해요. 지금… 지금!”

커튼자락에 말리고 풀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더니 신희영은 급기야 비틀거리며 침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라제니 골프장에서 그동안 지겹게 보아왔던 그녀의 나체였지만, 비틀거리는 그녀의 뒷모습에서는 새롭고 경탄스러운 아름다움이 번져 나오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아름답군… 정말 아름다워요, 신 여사.”

비록 짧은 거리지만 침대를 향해 비틀대며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요염하기 짝이 없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씰룩이는 엉덩이는 특히 일품이었다. 그녀가 침대 쪽으로 순순히 향하지 못해 두 팔로 하늘을 운전하며 되돌아 걷는 모습을 볼 때에는 강준호의 몸에 짜르르한 전율이 느껴지기도 했다. 비틀거리는 몸의 중심을 잡기 위해 두 팔을 높이 들었으니 젖가슴이 원추형으로 도드라졌던 것이다. 그뿐인가? 비틀대는 와중에서도 중심을 잡으려 애쓰는 모습은 마치 일류 모델이 농염한 자태로 스텝을 밟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그것도 누드모델이… 술 취한 듯한 누드모델이…

“알았어요. 지금… 지금 갑니다.”

소원이 지극하면 이루어진다고 했다. 벨벳커튼을 이리저리 감아 돌리며 그는 얼마나 지극히 소원했을까. 드디어 지겟작대기가 용트림을 시작하자 그는 껑충껑충 뛰어 신희영에게로 달려갔다. 마치 사자가 영양가젤을 덮치듯 그는… 그녀를 덮치며 침대 위로 몸을 굴렸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신희영은 네오리얼리즘에 입각한 사랑을, 그러나 강준호는 3단계 작전의 종지부를 찍기 시작했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