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시대정신을 주도적으로 움켜쥐고, 지지 기반을 확보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사람이 지도자가 될 충분한 개인사(history)를 갖고 있느냐는 문제는 시대정신이나 지지기반 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왜냐하면, 그가 앞으로 시대정신에 걸맞는 지지층의 요구를 잘 수행해 낼 것인가를 가늠하는 잣대이기 때문이다.
김영삼은 20대에 정치에 입문한뒤 끊임없이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관철한 이력이 바탕이 돼, 신진정치세력에 대한 기대감과 군정종식 문민시대 개막이라는 시대정신을 움켜쥐면서 지도자의 반열에 올랐다. 김대중 역시 김영삼과 함께 새 정치를 부르짖었고, 목숨을 건채 군사독재 정권에 항거하면서 헌정사상 최초의 정권교체, 대중경제 살리기 등의 시대정신으로 3전4기 끝에 지도자가 됐다. 백색테러를 당한 것도 그의 중요한 이력이다.
노무현은 인권변호사 활동과 구태적 3김정치의 청산을 위한 소신있는 정치행보를 바탕으로 탈권위 다원화, 평화정착이라는 시대정신을 움켜쥐었고, 이명박은 근대화의 역군, 정치-행정, 경영의 양수겸장형 경력 등을 기반으로 경제살리기라는 여망을 업었다.
지도자를 메이크업 하는 시대정신과 지지세력이 줄기나 가지라면, 개인 히스토리는 뿌리라고 할 수 있겠다.
▶‘히스토리’는 지도자 자질의 ‘뿌리’
나름의 정치적 히스토리를 가진 박근혜와 손학규가 기존정치의 틀 속에서 ‘제한된’ 변화와 쇄신을 도모하느라 좌고우면 하는 사이, 안철수는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파격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들뜬 논객은 1500억원대 기부를 발표하자 ‘통 큰 새정치’라고 논평한다. 이번 사재 헌납은 그가 정치의 속뜻을 갖고 있든 말든, 지도자가 되기 위한 히스토리를 더욱 빛나게 할 재료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안철수식 히스토리는 어떻게 구성될 것인가. 일단 콘텐츠를 예측해 보기전에 두어 가지 중요 변수부터 살펴봐야 한다.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민주화, 근대화, 반독재, 경제살리기, 탈권위, 인권옹호, 평화정착, 정치개혁, 역사바로세우기 등 기존의 대통령들이 걸어왔던 ‘정치적’ 히스토리의 가치가 앞으로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냐는 점이다.
초재선, 정조위원장, 3선, 사무총장, 장관, 원내대표 등 정치판에서의 성장 코스를 밟았으냐는 점도 정치적 히스토리로 볼 수 있는데 이 분야에 대한 기본적인 ‘경력관리’ 없이도 지도자가 되는데 제약이 없겠느냐는 것이다.
정치적 히스토리는 실무에서 이질적 의견들을 조화시키는 정치기술과도 관련 있기 때문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요소들이라고 정치평론가들은 말한다.
이는 이런 변수로도 연결된다. 청년희망, 중산층 살리기, 나눔문화 정착 등 비정부기관(NGO)으로서 캠페인하고 청원할 수 있는 내용들을, 장외에서 주창하고 실천하는 것 만으로도 정치 지도자로서의 이력으로 충분히 인정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다른 변수는 안철수가 ‘페이스메이커(pacemaker)’ 역할에 그칠 것인가, 대통령을 꿈꿀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당직, 투쟁 등 ‘정치적 히스토리’ 무용론
전자의 변수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순수한 사람이 불가피하게 정치기술을 익히는 과정에서 탈색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정치판 경력없이 대권에 도전하는 것은 날로 먹는 짓”이라는 비관론과 “기성정치권의 비판하고 장외에서 대안을 찾으려는 민심을 감안하면 기존 잣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키울수 있다”는 희망론이 교차한다.
이 간극은 어쩌면 기존 정치권의 인식-최근 민심 간 차이와 비례하는 것 같다.
현재 SNS에 떠도는 민심은 안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 “오리무중, 백가쟁명인 야권대통합 작업에 안원장이 절대 끼지 않기를 바란다”는 요구가 대세이다. 안 원장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시민들도 “정치판에 끼어들면 실망할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즉 현재로선, 민심의 과반수는 “똥물만 뭍히지 않으면 찍어줄수 있다”는 것으로 정리해도 될 듯 싶다. ‘당에서 조직 가동을 안하면 턱도 없다’는 기성정치인들의 말이 잘 먹혀들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여의도 공세와 요구 일거에 잠재운 타이밍
이번 기부 발표가 안 원장에 대한 정치권의 공세와 요구를 일거에 쓰러뜨린 점도 장외 히스토리가 정치적 히스토리보다 앞설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번 재산헌납 의사표명 시점은 한나라당이 “장내로 들어와 정정당당하게 해보자”며 정치입문을 촉구하고, 민주당이 “야권 대통합 논의에 참여하라”며 ‘날로 먹지 말라’는 요구를 표명한 직후다. 그가 사재 헌납을 밝히자 여야의 주장은 무색해졌고, 안 원장의 행동이 ‘더 큰 정치’, ‘장외의 승리’로까지 해석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안 원장은 굳이 정치적 히스토리를 만들 부담을 갖기 보다는 대한민국 평균시민, 평균계층이 바라는 점을 찾는 장외행보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했으면서도 현정권 실정(失政) 논란에 휩싸일 만한 사안에서는 일정한 거리를 두었던 박대표의 심정에 대해서도 안 원장은 청진기를 대보았을지도 모르겠다.
▶안, 기부의향 표하면서 중산층 붕괴, 비대칭 교육 지적 예상밖
그는 14일 안철수 연구소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에서 ▷더불어 살기, ▷중산층 붕괴, ▷젊은세대의 좌절, ▷교육의 문제점, ▷가치의 혼란, ▷저소득층 청소년의 꿈 등의 키워드를 내놓았다. 이는 향후 안 원장이 쌓아나갈 개인 히스토리의 재료가 되고, 나아가 지도자로서의 꿈을 실무적으로 메이크업 하는 공약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안 원장은 재작년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는 “성공한 자가 성공의 100%를 자기 개인화 하는 것은 문제 있다”라면서 나눔의 당위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난해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해서는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풍부한 경험을 통해 자기에게 뭘 잘 할 수 있는지 기회 부여해야 한다”면서 인력양성 철학에 대해 언급했다.
그가 임직원에 보내는 메일에서 중산층을 언급한 것은 예상 밖이었다. 보혁으로 갈려있던 정파들은 선거때가 되면 중간층, 부동표, 중도층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중산층에 대한 애정공세를 펴는데, 안 원장이 과거 좀처럼 언급하지 않던 중산층 얘기를 꺼낸 것이다. 안원장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던 중도성향의 시민과 소득 상위 25~50%여도 생활이 빡빡한 중산층에게는 호감을 가질수 있는 키워드임에 틀림없다.
▶청춘콘서트 3.0...10대 아빠 40대, 20대 아빠 50대와도 자연스런 소통
그는 아마 앞으로 개인히스토리에 20대 청년층 외에 10대, 그리고 10대 자녀를 둔 40대로 소통의 범위를 넓힐 가능성이 높다. 청춘콘서트의 흐름을 잇는 편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20대와의 소통을 ‘버전 업’하는 것이 향후 행보의 첫 수순이 아닐까 싶다. 콘서트 3.0 버전이다.
나아가 자산(資産)의 크기가 역대 어느 30대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지금 30대의 빠듯한 삶, ‘386 DNA’가 부활한 40대의 ‘신(新)민주주의’ 열망 등을 공유할수 있다. 그러나 옆을 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바쁜 40대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 매개는 바로 40대의 걱정 1순위 교육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사는 얘기, 교육 얘기는 평범해 보이지만 10.26 지방선거에서 보여진 2040 반란과 맞닿아 있기에 ‘NGO 수준의 울림’을 넘어 정치적 영향력으로 질적 전환이 이뤄질 수 있다.
분석편의상 잠시 구분해 놓을지 몰라도, 생물같은 사회, 이슈, 사람이라는 유기체를 놓고 쪼갤 것은 천하에 아무것도 없다. 한 덩어리라는 것이다. 알고보면 10대의 교육은 40대의 관심사요, 그들은 중간층, 중산층이다.
▶대화할 시민들 정치인 행정가 만큼 똑똑하다는 인식
세상사는 얘기는 자연스럽게 소득구조, 산업구조, 인력양성구조, 기업가의 마인드, 정책실패 원인, 복지사각지대, 기존 정치인에게 마음이 불편했던 이유 등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지금까지 위정자들은 경기가 침체되면 사장과 노조를 만나고, 과외가 문제되면 선생님, 학부모를 만났다. 그러니 대책은 쪼개져 나오고 유기체의 병은 고쳐지질 않는다.
전체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장과 노조, 선생님, 학부모...그들이 사실은 평균 40대이고 10대의 자녀를 두고있으며 20대의 아픔은 40-50대 부모가 공유한다. 직업, 업종, 옷깃(칼라)을 가르지 말고 그냥 시민을 만났어야 했던 것이다. 안철수는 지금 그러려고 하는 것 같다.
요즘 시민들이 정치인이나 행정가 보다 덜 똑똑한가? 아니다.
▶안 “흔적을 남기겠다. 있으나 마나한 존재가 되지는 않겠다”
안철수가 킹이 될 것이냐 킹 메이커가 될 것이냐는 너무가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단언하기 어렵다. 이른바 기성 정치인들이 말하는 ‘정치적 히스토리’의 필요성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안철수가 대권에 몸소 나설 것이냐, 신정치 지도자가 우뚝설수 있도록 ‘부흥’만 해주는 역할에 그칠 것이냐는 결정은 좀 늦게해도 상관없을 것 같다.
그는 지난해 백지연과의 대담에서 한 말은 이 시점에서 되뇔수록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는 “저는 어쨌든 기회를 얻고 지금 한국땅에 살고 있는 한사람인 것이고요, 그리고 기왕에 이렇게, 제 의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겠지만, 의식을 갖고 살고 있는 마당에서는 조금이라도 죽기 전에 제가 살았던 흔적을 남겨서, 그냥 있었다가 사라지고, 있으나 없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당시 백지연의 질문은 ‘나 스스로 나는 누구다 라고 간단히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것이었다. 안 원장은 당시 백지연의 기대보다 더 센 포부를 밝혔다고 해석할 만도 하다.
▶‘인플루언스 SW’ 매뉴 옵션 질서정연한 정치인 안철수
그의 편지 정치, 실천 정치, 하나씩 놓아버리는 정치행보를 보면 그에게는 총론 챕터 각론 등에 따라 일정한 옵션들이 소프트웨어 매뉴바 처럼이 있는 것 같다.
그 어떤 오해도 차단하면서 자신의 가치가 시민사이에 잘 투영되기 위한 소프트웨어인 것 같다.
<함영훈 선임기자 @hamcho3> abc@heraldm.com
abc@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