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0회> 열망을 품은 도전 13

‘구옥희, 고우순, 고우순, 박세리, 박세리, 박세리, 박세리, 펄신, 박세리, 박세리, 김미현, 박세리, 김미현, 박세리, 박지은…’

이 정도까지만 써내려가도 알 만한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벌써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태정태세 문단세’가 조선 왕의 순서이고 ‘수헤리베붕탄질, 산불레나마알규’가 원소주기율표에 나타난 원소의 순서라면, ‘구옥희’로 시작해서 ‘최나연’으로 끝나는 이 순서는 LPGA 1승부터 100승에 이르는 영광의 얼굴들, 이를 테면 한국 여자 골프사를 찬연히 빛낸 골퍼들의 우승 순서 아니겠는가.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1988년 3월 LPGA투어 스탠더드 레지스터 대회에서 구옥희 선수가 처음으로 우승컵을 안은 이후, 23년 만인 2011년 10월 16일 얼짱 최나연 선수가 사임다비 LPGA 대회에서 100승의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98년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으로부터 2010년 벨마이크로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통산 25승을 기록한 박세리 선수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고, 김미현, 신지애가 각각 8승, 박지은, 한희원이 각각 6승의 위업을 달성했으니… 한국 여자 골프선수들 만세라는 함성이 저절로 터져 나올 법도 했다.

LPGA 100승의 위업을 이룬 순간, 함께 라운드했던 ‘아사하라 무뇨스’ 선수의 축하 포옹을 받던 최나연 선수만큼이나… 이 순간 신희영도 벅찬 가슴을 달래는 중이었다. 온몸에 보디오일을 바르고 마스크 팩을 뒤집어 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내일… 벌건 대낮에 알몸으로 라운드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라요. 한편으로는 마구 떨리기도 하고요.”

“물론 벅차겠지요. 아마 한국 여자로서는 처음으로 누드 라운딩의 위업을 이루게 될지도 모르겠소.”

“그럴까요? 내가 한국 여자로는 처음일까요?”

“아마, 그럴 거예요.”

신희영은 가슴이 찡해져 옴을 느꼈다. 콧날이 시큰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가 이내 눈앞의 모든 사물들이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듯한 환각상태에 빠져들기도 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시절, 구옥희 선수가 미국에서 첫승의 감격에 젖어들던 모습과 어쩌면 그리도 쏙 빼닮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천 부장이 궁여지책으로 구입해 온 각막치료용 연고 때문에 눈앞의 사물이 흐릿해져 보인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러면 한국 여자 중에서 제일 먼저 누드 라운딩을 한다는 감동 때문에 눈앞이 흐려졌을라고?

“너무 벅차서 그런가요? 감동의 눈물이 계속 흘러서 그런가요? 아까부터 눈앞이 흐릿한 게 잘 뵈지도 않고….”

“허허! 신 여사님은 여전히 소녀 같은 게 흠이에요. 모르는 사람들과 알몸으로 마주할 생각을 하니 눈동자도 수줍음을 타는가보죠?”

윗도리를 벗은 채로 그녀 옆에서 상반신에 보디오일을 바르던 강준호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모르는 사람과 알몸으로 마주하다니요? 우리 식구들끼리만 누드 라운딩을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식구라면… 강유리 선수와 백광돌 씨? 에이, 모르시는 말씀! 누드 라운딩을 하려면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야만 해요. 남남끼리는 라운딩 후에 헤어지면 그만이지만, 아는 사람들과 홀랑 벗고 공을 친 뒤에 어떻게 뒷감당을 하시려고요?”

“딴엔… 그렇군요. 하지만 쑥스러워서 어쩌나?”

“그래서 서로의 알몸을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하지요.”

“아이, 참… 그래도 쑥스러워서 어쩌지요?”

신희영은 지그시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여전히 부끄러워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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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el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