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1>인정사정 볼 것 없다 (36)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남우세스러운 경우이긴 하지만… 혹시 ‘바바리 맨’이라 불리는 치한의 원맨쇼를 본 적이 있으신지? 그것도 타잔처럼 밧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벌이는 쇼를 단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으신지?
바바리코트를 훌렁 벗어젖히면 드러나는 알몸. 그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물며 월야침침 야삼경에 하늘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오는 바바리맨의 모습에 하와이 관광객들이 놀라 고함을 치는 것은 당연지사 아니겠는가.
6층, 5층, 4층… 느릿느릿 아래로 향하는 완강기에서 투숙객들을 마주칠 때마다 놀라 소리를 치는 사람은 오히려 백광돌이었다. 물론 6층, 5층, 4층에 투숙한 사람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베란다에 나와 앉아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면서 이국의 정취를 느끼던 중에 홀연히 벌거벗은 사내가 둥둥 허공을 날고 있으니 혼비백산 할 수밖에.
‘홧츠 댓?’ 6층 투숙객은 유럽인인 모양이었고… ‘아! 요다카, 요다카!’ 5층엔 일본인이 투숙한 모양이었다. 그런가하면 4층엔 ‘엄마! 황금박쥐…’ 하면서 소리 지르는 꼬마가 있었으니 아마도 한국 사람이 묵는 모양이었다. 참고로 ‘요다카’는 하늘을 높이 날다가 새나 병아리를 낚아 채가는 사나운 밤매를 일컫는 말이다. 원래가 그렇다는 말이지만 얼굴에 분가루를 범벅으로 뒤집어쓰고 밤거리에서 손님을 낚아채는 싸구려 매춘부를 일컫는 일본말이기도 하다. 어쩌면 5층 투숙객은 백광돌의 기괴한 모습을 보고 손님을 낚아채기 위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최신식 매춘부로 착각한 지도 모를 일이었다. “왜들 이렇게 비명을 지르지?”
마침 베란다로 나서던 신희영이 그 비명소리를 못들을 리 없었다. 6층, 5층, 4층으로 이어지는 비명소리에 이어 이번엔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하와이 경찰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모르게 사건 현장에 들이닥치곤 한다. 야밤에 옷 벗은 사내가 허공을 날고 있으니 이것도 사건이었고, 이곳도 사건 현장임에는 틀림없었다.
“어머, 저 사람 좀 봐요. 도둑인가 봐. 곤도라를 타고 4층으로 침입해요.”
“저런, 저런, 별 희한한 도둑놈이 다 있네. 하지만 걱정 말아요. 벌써 경찰 백차가 들이 닥쳤잖소?”
지척거리였지만 위에서 내려다보면 오로지 정수리만 보일 뿐이니 그 작자가 백광돌인 줄 알 까닭이 없었다. 그러니 신희영과 강준호는 뜻하지 않게 벌어진 구경거리에 손뼉을 치거나 탄성을 내뱉을 뿐이었다. 완강기의 밧줄이 과연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탐색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으니… 그 와중에 애를 태우며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은 공범이나 다름없는 강유리 뿐이었다.
“어머, 저건 또 무슨 일이야? 경찰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한승우 실장 아니에요? 어라, 한솜이도 따라 내리네… 유리 양, 저 아이… 한솜이 맞지요?”
목소리만 들어봐도 신희영은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강유리는 아직도 거실 뒤편에서 머뭇거리고만 있을 뿐 아래를 내려다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오로지 진땀! 어쨌거나 완강기를 탄 백광돌이 바지라도 제대로 꿰어 입었길 바랄 뿐이었다. 신희영과 강준호가 중계방송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순간순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잠시 후, 초인종 소리와 함께 하와이 경찰관들이 숙소로 들어섰을 때, 강유리는 울컥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 경찰관 뒤로 겨우 팬티만 걸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따라 들어오는 백광돌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백광돌의 뒤로 유한솜과 한승우도 따라 들어오는 것 같았지만 흐르는 눈물로 앞이 침침해졌기 때문에 제대로 확인할 수도 없었다.
“우리는 하와이 주 경찰입네다. 그리고 나는 한국어 통역입네다. 나, 한국말 잘 알아듣습네다. 해명해 주세요.”
경찰이 깻잎만이나 한 배지를 내보이며 말했다. 신희영은 얼굴빛이 하얗게 변해갔고 강준호는 놀란 눈으로 유리를 돌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통역인은 손가락으로 유한솜, 한승우, 백광돌을 줄줄이 지목하며 신희영에게 묻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 당신네 식구 맞습네까? 앤드… 그리고, 이 토플리스 남자도 당신네 식구라고 합니다. 맞습네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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