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인정사정 볼 것 없다 (13)

글 채희문 / 그림 유현숙

무릇 사람의 감정은 이성을 압도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머릿속으로 아무리 냉철하게 계산을 했다 쳐도 막상 회가 동하고 지름신이 강림하면 누구나 내지르고야 말더라는 것이다. 명품 핸드백을 사는 것만 지르는 것일까? 아니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도 지르는 것이라고 보아야 옳다.

“살아났구나. 한솜이…”

탐스런 젖가슴 위에 두 손을 포개어 얹고 말 달리던 중에 그녀가 눈을 반짝 뜨자 한승우는 겸연쩍기 그지없었다. 눈이 마주쳤으니 뭐라고 위로를 하든지 변명을 하든지 해야 할 텐데 막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자세가 기묘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땐 누구나 변명부터 둘러대는 것일까?

“한솜아, 오해하지 마라. 내가 이러고 있는 건…”

말은 이렇게 꺼냈지만 자세는 전혀 바꿀 수 없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승우의 두 손은 여전히 그녀의 탐스런 젖가슴 위에 머물러 있었고, 자세 역시 말 타듯 배 위에 올라앉은 그대로였다. 유한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로서는 이 모든 행위가 난생 처음 겪어보는 사건이었다. 머릿속으로 상상해 본 적은 있어도 남자의 손이 맨 젖가슴을 만지도록 내버려두긴… 정말 처음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행동이 돌처럼 굳어버린 까닭은 불현듯 나타난 두 사람의 경찰관 때문이었다. 모래사장을 걸어왔으니 발자국 소리가 날 리도 없었고, 둘이 기묘한 자세로 눈을 마주치고 있었으니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알아챌 수도 없었다.

“와류 두잉?”

미국사람들 발음은 참 알아듣기 힘들다. 버터를 많이 먹어서 혀가 미끄러지기 때문이라던데… 느닷없이 회화를 하자고 덤벼든 경찰관 덕에 유한솜의 머릿속은 하얗게 질려버리고야 말았다.

“왓 아유 두잉?”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모자를 쓴 두 사람 중에서 여자가 아주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묻는 중이었다. 아니, 한 번은 현지발음으로 혀를 굴려가며 물었지만 알아듣지 못하자 관광영어 버전으로 재차 묻는 중이었다.

… 분명히 경찰관 복장이었다. 아직까지 그들을 볼 수 있었던 건 유한솜 뿐이었다. 왜냐고? 그녀는 백사장에 누워서 하늘 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한승우는 아직도 말 탄 자세로 주저앉아서 정신 못 차리며 유한솜을 내려다보던 중이기 때문이었다.

“한솜아, 왜 갑자기 영어로 묻고 그래? 오해하지 말라니까? 난 여태까지 인공호흡을 하고 있었다고.”

한승우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 그녀가 반짝 눈을 뜨는 통에 놀라서 아직도 제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었다. 혹은 어두워서 입술의 움직임을 가늠하지 못했던 것일까? 한동안 여자 경찰관이 속삭이듯 영어로 묻고, 한승우가 유한솜에게 당당히 한국말로 대답하는 진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유 캔트 잉글리쉬?”

“야, 장난치지 마! 네가 물에 빠져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

“The interpretation is necessary?”

“너 정말 까불래?”

“Follows me and comes.”

결국 그들은 경찰관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하와이란 곳은 범죄자가 없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니 경찰관도 할 일이 없겠지. 따라서 하와이 경찰관 들은 야간에 청소년 선도를 위한 순찰을 주로 하는 편이다. 오늘도 그들은 야간순찰을 나왔다가 해변의 정사로 판단되는 현장을 목격했던 것이다. 지붕이 설치되지 않은 해변에서의 정사는 하와이에서는 불법이다. 특히 청소년이 가담된 경우에는 적극 선도해야 할 사안이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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