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硏 ‘벤처투자 시장 회복을 위한 금융권 역할’ 보고서
3분기 말 국내 벤처투자 규모 8.6조원…2021년과 비교해 감소
“고액자산가 등에 대한 규제 완화 필요…퇴직연금 활용도 방안”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만년 ‘쥐꼬리’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와 함께 벤처투자 활성화를 유도하고자, 퇴직연금을 통한 벤처펀드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벤처투자 규모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민간 중심 벤처펀드 조성을 위해 펀드의 주요 자금조달처인 은행과 기업, 개인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김상진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벤처 투자 시장 회복을 위한 금융권의 역할’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국내 벤처투자 누적 규모는 8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3% 증가했다. 그러나 이전 최고치인 2021년 투자 규모(10조9000억원)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ICT 서비스, 바이오·의료, 전기·기계·장비, 유통·서비스 분야가 벤처 신규 투자를 주도했으나 영상·공연·음반 분야의 신규 투자금액은 급감했다. 벤처캐피털(VC)을 중심으로 투자자가 수익 외 회수 여부를 우선 고려하며, 상대적으로 업력이 긴 기업에 대한 신규 투자가 늘어난 영향이다. 올 3분기 말 기준 업력별 투자실적 추이를 살펴보면 ▷초기 1조6000억원 ▷중기 2조4000억원 ▷후기 4조6000억원 등이었다.
무엇보다 민간부문 출자 감소 추세가 나타나며, 신규 벤처펀드 조성에 악영향을 줬다. 모태펀드, 성장금융, 산업은행 등 중심의 정책금융 부문 출자금액은 이전 최고 수준인 2021년, 2022년을 상회하거나 근접했다. 그러나 개인, 일반법인, 금융기관 등 민간부문 출자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15.9% 감소하며, 전체 벤처펀드 결성 실적이 감소했다.
특히 금융회사의 벤처펀드 감소 추세가 두드러졌다. 금융회사의 벤처펀드 출자금액은 올해 3분기 누적 기준 2조2000억원으로 2년 전인 2022년 3분기(3조8000억원)과 비교해 1조6000억원 감소했다. 누적 비중 또한 2023년 3분기 34.6%에서 27.1%로 감소했다.
이는 은행 자본을 규제하는 새로운 기준 ‘바젤Ⅲ’이 도입되며 은행권의 벤처투자에 대한 높은 위험가중치가 적용된 영향이다. 현재 대상별 위험가중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150% ▷상장주식 250 ▷벤처투자 400 등이다. 부동산PF 리스크보다 벤처투자 리스크가 큰 상황에서, 벤처투자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올해 들어 일부 금융그룹은 민간벤처 모펀드를 구성하는 등 민간 주도 벤처펀드 결성과 관련해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정책당국의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지속된다. 은행 등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 연구위원은 “민간 중심 벤처펀드 조성을 위해서는 주요 자금조달처인 은행과 기업, 개인에 대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그 방안 중 하나로 일부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퇴직연금을 통한 벤처펀드 가입을 허용해, 벤처펀드 투자자 풀 확대 및 퇴직연금 수익률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퇴직연금감독규정 9조는 비상장주식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해 퇴직연금의 벤처펀드 접근이 불가한 상황이다.
김 연구위원은 “2021년 판매된 ‘국미참여 뉴딜펀드’(벤처투자 허용)의 사례에서 보듯 장기로 금융상품을 운용하려는 가입자 중 일부는 포트폴리오 다변화 차원에서 벤처투자에 대한 관심이 있다”면서 “리스크 우려 시 DC 가입자 중 전문투자자 자격을 갖춘 일부 고액자산가를 대상으로 벤처펀드에 가입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정책당국은 벤처 생태계 전반을 지원하기 위해 은행과 기업의 벤처투자에 대한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은행권 벤처투자 위험가중치를 예외 적용하는 게 골자다. 대기업 등 산업자본의 벤처투자 참여 촉진을 위한 CVC(기업형 벤처캐피털)의 외부자금 모집, 해외기업 투자 규제 완화도 논의되고 있다.
이에 따른 금융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뒤따른다. 김 연구위원은 “벤처기업의 밸류에이션이 조정된 상황에서 벤처 투·융자 대출 등을 차용해 로컬 벤처기업 및 지역 영업을 지원해 수익 확대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면서 “수익확보뿐만 아니라 투자 기업과 협업을 강화해 금융권 혁신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