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긴 노후에 닫힌 지갑, 내수 침체 구조적 원인 직시해야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내수 침체를 심화시키는 한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민간소비 증가율은 연평균 3.0%에 그쳤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은 4.1%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민간소비 비율인 소비성향도 2004년 52.1%에서 2024년 48.5%로 3.6%포인트 떨어졌다. 가계가 지갑을 닫고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는 그 배경으로 ‘기대수명 증가와 노동시장 구조의 불일치’를 지목했다.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2004년 77.8세에서 2023년 84.3세로 6.5세 늘었다. KDI는 지난 20년간 3.6%포인트 감소한 소비성향 중 3.1%포인트가 기대수명 증가에 따른 영향이라고 분석했다. 기대수명이 1년 늘어나면 소비성향은 평균 0.48%포인트씩 낮아진다.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인 시대지만 정작 그 길어진 노후가 현재의 소비 여력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은퇴가 가까워진 50, 60대는 소
2025-04-24 11:14
-
[사설] 美관세 中희토류 압박에 낀 韓…실리적 통상대응 절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우리는 중국과 잘하고 있다”며 통상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협상에 진전이 없다면 미국이 숫자를 결정할 것”이라면서, “관세율은 상당히 내려가겠지만 제로는 아니다”라고도 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 역시 중국과의 관세 갈등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협상 가능성에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미·중 갈등 완화 신호에 이날 뉴욕 증시는 반등했고, 애플·테슬라·엔비디아 등 기술주는 일제히 상승했다. 전날 트럼프의 기준 금리 인하 압박과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의장을 향한 비난으로 급락했던 뉴욕 증시가 돌아선 것은 베선트의 발언 때문이다. 베선트는 JP모건이 비공개로 주최한 투자자 행사에서 대중 협상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합의가 가능하다고 했다. 중국 경제와 ‘분리(decouple)’가 아니라 ‘재조정’이라는 목표도 밝혔다. 사실상 무역금지조치나 마찬가지인 125%가 넘는 관세 폭격을 주고 받은 긴장국면이 완화될 수 있다는 전망에 시장
2025-04-23 11:08
-
[사설] ‘주가 5000시대’, 기업 옥죄며 될 일인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21일 자본시장 정책 간담회에서 “코스피지수 5000시대를 열겠다”며 상법 개정을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강조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기존 안에다 집중투표제 활성화,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겠다는 것이다. 불공정 거래를 해소해 주가를 부양하겠다는 취지지만 기업을 족쇄로 묶는 방식이 과연 자본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될지는 따져볼 일이다. 물론 한국 증시 저평가에는 기업 스스로 제도를 악용한 책임도 적지 않다. 투자자 몰래 물적 분할을 강행하고, 신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쪼개 상장한 뒤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를 희석시키는 ‘쪼개기 상장’이 대표적이다. 한국의 중복 상장 비율은 18.4%로 미국(0.35%)과는 비교가 어렵고, 우리나라보다 자본시장이 덜 발달한 대만(3.18%)이나 중국(1.98%)보다도 압도적으로 높다. 일본은 4.38%인데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더 줄이려는 정책적 시도를
2025-04-22 11:12
-
[사설] 한은 1분기 역성장 경고, 12.2조 추경 실기 말아야
한국은행이 올해 1분기 우리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할 가능성을 공식 언급했다. 내수 둔화에 통상 여건 악화까지 겹치면서, 불과 두 달 전 전망했던 0.2% 성장조차 물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올해 연간 성장률도 1.5%를 밑돌 수 있다며 5월 발표할 수정 전망에서 추가 하향을 시사했다. 이미 한국 성장률을 0%대까지 낮춘 기관들이 나오고, 세계무역기구(WTO)는 올해 세계 상품무역 성장률이 0.2% 감소할 것으로 봤다. 1%대 방어도 버거운 상황이다. 한은이 공식 발표에 앞서 역성장 가능성을 이례적으로 언급한 건 충격 완화용 사전포석으로 보인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이창용 총재는 “갑자기 어두운 터널로 들어온 느낌”이라고까지 했다. 경제가 식어가면 금리를 낮추는게 당연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게 한은의 처지다. 한은은 18일 기준금리를 2.75%로 동결했다. 미국의 대중국 고율 관세 부과, 원화 약세에 따른 외환시장 불안, 가계부채 재확산 우려 때문이다. 특히
2025-04-18 11:07
-
[사설] 원조 받던 美에 66년만에 원자로 설계 기술 수출한 한국
한국이 원자력 기술의 본산인 미국에 연구용 원자로 설계 기술을 수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원자력연구원, 현대엔지니어링, 미국 MPR이 참여한 컨소시엄이 미국 미주리대가 발주한 ‘차세대 연구용 원자로’ 사업 초기설계 계약을 따냈다. 1959년 미국으로부터 첫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 마크-2’를 도입한 지 66년 만에 원자력 원조국이었던 미국에 설계 기술을 역수출한 기념비적 성과다. 이번 사업은 열출력 20㎿(메가와트)급 고성능 연구로를 건설하기 위한 초기설계 단계로, 부지 조건과 환경영향평가 등 사전 설계 분석이 핵심이다. 원자력연 컨소시엄은 이 사업에 참여해 지난해 7월 최종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사업 첫 단계인 초기설계 계약을 17일 확정했다. 기술의 첫 신뢰를 가르는 관문에서 한국 컨소시엄이 선택받았다는 것은 수십 년간 축적된 연구로 분야 기술력이 세계에서 통했다는 증거다. 연구로는 의약용 동위원소 생산, 첨단 소재 실험, 중성자 과학 등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그
2025-04-17 11:43
-
[사설] 이재명 ‘AI 기본사회’, 기술혁신 위한 규제 완화 필수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첫 정책 공약으로 ‘인공지능(AI) 기본사회’ 구상을 내놨다. AI 분야에 100조원을 투자하고, 국민 누구나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형 챗GPT’를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GPU(그래픽처리장치) 5만개 확보·NPU(신경망처리장치) 기술 주권 확보, AI 단과대 설립, 병역특례 확대 등 전방위 지원도 약속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AI위원회를 강화해 민관 협력을 총괄하고,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인프라 투자에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구상이다. AI가 향후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기술임은 분명하다. 이 전 대표가 “AI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강조한 점은 시의적절하다. 특히 초기 인프라가 부족한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지원하고, 국민 전체가 AI 기술의 혜택을 누리게 하겠다는 것은 충분히 설득력을 지닌다. 최근 미국, 중국 등 AI 패권국 간 기술 경쟁이 격화하고 있는 와중에 한국도 더
2025-04-15 10:58
-
[사설] 이번엔 전자 관세 혼선, 일희일비 말고 정교한 대응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를 동시에 밀어붙이며 시장에 심각한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지난 11일 (현지시간) 상호관세 예외 품목으로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모듈 등을 공지하면서 강경 기조에서 한발 물러선 게 아니냐는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13일 트럼프는 “관세 예외가 아니다. 단지 다른 관세 범주로 옮긴 것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오락가락 발표에 기업과 시장 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문제의 시작은 CBP가 발표한 상호관세 예외 목록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 다수 포함되면서 기업들은 안도했지만, 이내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는 제외되지만 품목별 관세는 부과하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상호관세는 상대국과 협상 여지가 있지만, 국가 안보를 내세운 품목별 관세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세를 면제하겠다고 했다가 다른 법적 틀로 다시 부과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이쯤 되면 누가 정책을 발표해도 믿기 어렵다는 말이
2025-04-14 11:02
-
[사설] 서울 부자도시 순위 ‘뚝’…자본 이탈 이유 돌아봐야
서울이 ‘세계 부자 도시’ 순위에서 1년 새 19위에서 24위로 5계단 추락했다. 영국 컨설팅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와 자산 정보업체 뉴월드웰스가 발표한 50대 부자 도시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이다. 서울에 거주하는 백만장자 수는 전년 8만2500명에서 6만6000명으로 20% 가까이 줄었고, 억만장자 수도 195명에서 148명으로 감소했다. 10년간 누적 백만장자 증가율도 17%에 그쳐, 전년도 수치(28%)보다 크게 꺾였다. 한국의 자본 경쟁력이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번 조사는 부동산을 제외한 상장 주식, 현금, 암호화폐 등 유동자산 100만달러 이상 보유자를 집계한 것으로, 국제 금융시장에서 평가받는 자산 가치의 변동을 보여준다. 자산 이탈의 배경은 분명하다. 원화 가치의 급락이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은 1288원에서 1472원으로 14%나 올랐다. 수출기업엔 유리할 수 있지만 자산가와 외국인 투자자에겐 치명적인 환차손 리스크다. 실제로 코스피는 지난해 원화 기준
2025-04-11 11:09
-
[사설] 청년은 쉬고, 제조업은 무너지고…근본적 해법 필요
3월 청년 실업률이 7.5%까지 치솟았다. 코로나 위기였던 2021년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그냥 쉬었다’는 청년도 1분기(1~3월) 46만명을 넘어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제조업과 건설업에서는 각각 11만2000명, 18만5000명 취업자가 줄어 코로나 국면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이런 상황이 1년 가까이 어어지고 있다. 단순한 경기 부진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봐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3월 전체 취업자는 전년 동월보다 19만3000명 늘었다. 보건복지, 공공행정 등 정부 재정에 기대는 분야에서 대부분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일자리사업 일시 종료 등의 영향으로 5만2000명 줄었던 고용은 올해 1월 13만5000명 증가한 데 이어 3개월째 10만명대 증가세를 유지 중이다. 청년과 민간 일자리는 줄고 있지만, 세금으로 만든 일자리는 계속 늘고 있다는 얘기다. 제조업, 건설업, 도소매업 등 민간 일자리 감소는 더는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제조
2025-04-10 11:00
-
[사설] AI 패권경쟁에서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
세계 인공지능(AI) 패권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거의 존재감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최근 발표한 ‘AI 인덱스 2025’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주목할 만한 AI모델로 평가받은 한국산은 단 1개뿐이었다. 미국은 40개, 중국은 15개가 선정됐다. 한국이 글로벌 AI경쟁에서 한참 밀리고 있다는 뜻이다. AI 인덱스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 각국 정책결정자들이 참고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AI산업 보고서다. 한국은 지난해엔 주요 AI모델 개발 부문에서 누락돼 정부와 기업이 항의한 끝에 올해 1개를 올리게 됐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독점하던 생성형 AI 주도권에서 턱밑까지 추격했다. 주요 벤치마크에서 미국과 중국의 AI모델 성능 격차는 0.3~3.7%포인트로 크게 줄었다. 1년 전만 해도 13.5~31.6%포인트였던 양국 격차가 이제는 동급 수준이 된 것이다. 이런 변화의 중심엔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딥시크’가 있다. 미국의
2025-04-08 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