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이 격해지면서 미국의 한국에 대한 파병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의 역할 확대를 거듭 요구한 데 이어 백악관과 에너지부 장관 등도 잇따라 “자원 투입을 기다리고 있다”며 한국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 반면 이란은 한국이 호르무즈에서 이란에 맞서는 행동을 하면 “군사적 침략과 전쟁 참여”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한국의 선택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한국의 ‘천궁-Ⅱ’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해야 한다는 워싱턴포스트 칼럼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다. 호르무즈 파병을 주저하는 한국에 대한 우회적 압박으로 읽힐 만하다. 반도체 관세와 핵잠수함, 전시작전통제권 등 한미 간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호르무즈 문제까지 겹쳐 정부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일정 부분 호응하면서도 전쟁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P-8 해상초계기와 군수지원함, 폭발물처리반(EOD) 등을 보내 우리 선박의 안전한 통항과 해상 감시, 구조·구난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파병이 이뤄진다면 과거 이라크 파병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당시 자이툰부대의 주된 임무는 평화 정착과 재건 지원이었다. 지금은 미국과 이란이 직접 군사적으로 충돌하고 있고 전쟁의 명분도 약하다. 비록 비전투 임무라 해도 이란이 한국군의 개입을 적대행위나 전쟁 참여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그렇다고 호르무즈를 남의 일처럼 외면할 수도 없다. 이란의 해협 봉쇄는 자유로운 항행을 위협하고 우리 원유·가스 수입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우리 선박의 안전과 항행의 자유를 지키는 것 역시 국익과 직결된 문제다.
호르무즈에 관여하더라도 미국의 대이란 군사작전에는 명확한 선을 그어야 한다. 한국 선박을 비롯한 민간 선박의 안전한 통항 지원에만 집중해야 한다. 이런 점을 이란에도 분명히 알려 오해와 충돌 가능성을 줄여야 한다. 그렇더라도 전쟁에 휘말릴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군이나 선박이 공격을 받을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 언제 임무를 중단하거나 철수할지까지 미리 정해둬야 한다.
더 나은 방법은 호르무즈 이해 당사자인 여러 나라가 함께 참여하는 해상안전 협력체를 만드는 것이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이 프랑스를 국빈 방문 중이다. 프랑스는 호르무즈의 자유로운 항행을 위한 국제 연대를 주도하고 있다. 8일 한·프 정상회담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항행을 위한 협력 방안을 깊이 논의하고, 한국이 참여할 수 있는 다자간 해상안전 체계를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동맹의 책임을 다하면서도 국익을 지킬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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