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내 아들이 지금 같이 엉망인 로마에서 살게 할 수 없다”며 5년전 정치권에 뛰어든 정치신인 여성이 이탈리아 로마 시장 자리를 사실상 예약했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 여성 시장이 나오기는 2500년 역사상 처음이다.

이탈리아 제1 야당 오성운동(M5S) 진영으로 로마 시장에 출마한 비르지니아 라지(37) 후보는 19일 밤 11시(현지시간) 지방선거 결선투표가 마감된 직후 발표된 출구 조사에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영방송 RAI뉴스의 로마 시장 결선투표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라지 후보는 64~66%의 득표율을 얻어 32~36%에 그친 집권 민주당의 로베르토 자케티 후보를 배 이상 차로 압도했다. 라지 후보는 2주 전 치러진 1차 투표에서도 총 투표의 35% 이상을 얻어 자케티 후보를 득표율에서 10%포인트 이상의 차로 여유 있게 따돌려 이변이 없는 한 결선투표에서도 무난히 승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라지 후보의 로마시장 당선으로 로마는 프랑스 파리,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칠레 산티아고에 이어 여성을 시장으로 둔 도시 대열에 합류하게 됐다.

라지 후보는 지난 2월 이탈리아 제1야당 오성운동의 인터넷 투표를 거쳐 로마 시장 후보로 선출됐을 때만 해도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정치 신인이었다. 로마3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로 일하던 그는 “내 아들이 지금 같이 엉망인 로마에서 살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2011년 오성운동을 통해 정치에 입문했다. 이후 2013년부터 로마 시의원으로 일하며 교육과 환경 문제에 특히 관심을 쏟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나이답지 않은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와 논리적인 언변으로 TV토론 등에서 기성 세대에게는 신뢰감을 심어줬고, 상냥한 태도와 호감형 외모를 앞세워 젊은층에게도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또 거대 담론보다는 생활 밀착형 언어를 쓰며 일상 생활의 병폐를 해결하겠다는 공약도 주효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라지 후보가 불과 4개월의 짧은 선거 운동 기간 단숨에 전국구 ‘신데렐라’로 떠오를 수 있었던 데에는 그만큼 로마 시민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컸기 때문이다. 2014년 말부터 이탈리아 정계를 흔든 마피아 범죄 조직과 로마 시청의 결탁 의혹을 계기로 부패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더 깊어진 로마시민들이 기존 정치와 비교적 무관한 새로운 인물에게 그나마 기대를 걸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이번 이탈리아 지방선거에서 제1 야당 오성운동이 약진하면서 정치지형도 급변할 전망이다. 오성운동은 신랄한 정치 풍자로 인기를 끈 코미디어 베페 그릴로가 ‘깨끗한 정치’를 기치로 내걸고 좌파와 우파라는 기존 정당 체계를 부정하며 2009년 창설한 정당이다. 오성(五星)은 물ㆍ교통ㆍ개발ㆍ인터넷 접근성ㆍ환경 등 정당의 5가지 주 관심사를 뜻한다.

오성운동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수도 로마 시장에 북부 산업 도시 토리노 시장까지 창당 이래 최대의 전리품을 수확하는 성과를 냄으로써 2018년으로 예정된 총선을 앞두고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할 든든한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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